[간첩사건 증거조작 수사 결과] “내용 확인 않고 클릭결재”… 국정원 윗선 해명 그대로 인정

입력 2014-04-15 03:31 수정 2014-04-15 16:27


檢 수사 무엇이 문제였나

항소심 재판부에 수차례 위조문서를 증거로 제출했던 검사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유우성 수사팀’ 대부분이 위조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를 지휘·감독했던 ‘윗선’ 역시 모두 혐의 없음 결론이 났다.

◇“공소유지팀, 국정원 말 쉽게 믿었다”=서울중앙지검 증거위조 수사팀은 유씨의 공소유지를 담당했던 검사들이 국정원 문서의 입수 경위를 검증하려 한 점을 무혐의 판단 근거로 댔다. 공소유지팀은 권모(52) 과장이 입수한 출·입경기록(출-입-입-입)이 발급기관, 날인 등이 없어 공식문서로 보기 어렵다며 증거 제출을 거부했다. 이후 김모(48) 과장(일명 ‘김 사장’)이 문제의 허룽시 공안국 명의 출·입경기록(출-입-출-입)을 들고 오자 지난해 10월 24일 외교부를 통해 발급확인서도 요청했다.

그러나 공소유지팀의 검증노력은 꼼꼼하지 못했다. 권 과장이 첨부한 영사확인서와 김 과장이 입수한 문서의 발급일자는 각각 2013년 9월 27일과 9월 26일로 하루 차이가 나고 내용이 배치된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비정상적임을 의심하는 게 상식적이다.

게다가 공소유지팀은 발급확인서를 받기 전 김 과장이 입수한 출·입경기록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입수 경위를 의심해 조치를 취해놓고도 검증문서가 오기 전 제출한 것이다. 이에 수사팀은 “어쨌든 발급확인서가 왔고 그 과정에서 국정원 말을 믿었던 것 같다”고 했다. 수사팀은 공소유지팀이 서로 다른 팩스번호가 찍힌 발급확인서를 수일 간격으로 인계받아 제출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별 생각 없이 제출한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이날 공소유지팀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고 대검 감찰본부는 수사팀 자료를 넘겨받아 감찰에 착수했다.

◇“국정원 ‘윗선’, 내용 모른 채 클릭 결재했다”=수사팀은 국정원의 증거 위조 ‘공작’이 이모(55·3급) 처장의 총책임 하에 이뤄졌다고 결론 냈지만 국보법상 무고·날조 혐의 적용 없이 불구속기소했다. 수사팀은 “구체적인 범행 모의와 실행은 4급 과장 이하에서 이뤄졌고, 이 처장은 결재한 수준”이라며 “27년간 대공수사 업무에 근무했다는 정상도 참작했다”고 했다.

수사팀은 이 처장의 상사인 최모 단장과 이모 국장이 증거위조와 관련한 문서를 일부 결재한 흔적도 발견했다. 그러나 최 단장이 “전자결재로 전문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클릭 결재했다”는 진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수년간 내사를 진행하면서 거액의 예산이 투입됐고, 국정원 개혁 문제로 민감했던 지난해 8월 무죄 판결이 난 중요 사건 수사가 실무진급에서 전결 처리됐다는 국정원 해명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상명하복의 조직 특성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수사팀은 이 국장을 서면조사하는 데 그쳤고, 남재준 국정원장은 고발까지 됐지만 조사 없이 ‘무혐의’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국정원 서천호 2차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나 정치적 책임일 뿐 법적 책임은 아니었다.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15일 수사팀을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