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KT에 21억 과징금… 중기에 PC 제조 위탁 후 부당하게 계약 취소 혐의
입력 2014-04-15 02:32
공정거래위원회는 14일 중소기업에 태블릿PC 제조를 위탁했다가 잘 팔리지 않자 부당하게 계약을 취소한 KT에 과징금 20억8000만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지난 정부에서 무혐의 취지로 덮었던 사건을 뒤늦게 재조사하는 등 공정위가 법적용의 일관성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있다.
◇공정위, “KT, 안 팔리자 계약 파기”=KT는 2010년 9월 통신기기 제조업체 엔스퍼트에 대당 30만원 가격으로 저사양 태블릿PC 20만대의 제조를 위탁했다. 경쟁사인 SK텔레콤이 삼성 갤럭시탭을 내놓기 전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일단 3만대를 시장에 내놨지만 판매는 부진했다. 결국 KT는 6개월 뒤 제품 하자 등 엔스퍼트에 책임을 전가하며 남은 17만대에 대한 제조위탁을 취소했다. KT는 엔스퍼트의 자금 사정이 어려운 점을 이용해 다른 태블릿PC 4만대를 주문하면서 기존에 발주한 17만대(510억원)의 위탁계약을 무효화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을 썼다. 공정위 선중규 제조하도급개선과장은 “KT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제조위탁을 한 제품을 마음대로 취소한 부당행위”라고 설명했다.
◇정권 따라 바뀌는 조사결과=엔스퍼트는 17만대의 계약이 취소되고 8개월 뒤인 2011년 11월 공정위에 KT의 불공정행위를 신고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듬해 5월 심의절차를 종료했다. 사실상 무혐의 결정이었다. 엔스퍼트는 곧바로 재신고를 했지만 조사는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묻힐 것 같은 이 사건은 지난해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조사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시기적으로 당시 이석채 KT 회장에 대한 검찰 조사와 맞물린다.
재판부 격인 공정위 전원위원회(위원장 노대래)가 무리한 법적용을 했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17만대 취소 계약과정에서 KT는 엔스퍼트와 2011년 3월 2일 17만대 납기를 3개월 연장하는 합의서를 썼지만, 6일 뒤인 8일 17만대 무효화 계약서를 썼기 때문에 계약 무효는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는 입장이다. 반면 검찰 격인 공정위는 합의서와 계약서상 날짜는 2일과 8일로 돼 있지만 두 문서 모두 양측이 8일에 서명날인 했기 때문에 무효화 계약서는 진정성 있는 합의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리적으로는 KT의 논리가 타당하다는 평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불과 한 달 전에 편의점 갑의 횡포 혐의에 대해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재심사 결정을 내린 전원위가 이번에는 왜 법리를 따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