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어머니의 나라서 꿈 이루다

입력 2014-04-15 03:23


프로농구 문태종, 플레이오프 MVP 받은 동생 태영 이어 정규리그 MVP 차지

“우리 두 아들 최고예요.” 어머니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고운 한복을 차려 입은 문성애(58)씨는 프로농구 창원 LG의 큰아들 문태종(39·1m99)과 울산 모비스의 작은아들 문태영(36·모비스·1m94) 사이에 앉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문태종은 14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3∼2014 KB국민카드 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기자단 투표 총 98표 가운데 71표를 얻어 프로농구 역대 최고령이자 귀화선수 최초로 최우수선수(MVP)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 동생 문태영은 이미 챔피언결정전 MVP에 선정됐었다.

문씨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형제가 대결을 벌여 마음이 좋지 않았다”며 “두 아들이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MVP에 올라 기쁘다. 많은 사람들이 두 아들을 사랑해 줘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소감을 밝혔다. 형제가 맞대결을 벌이면 문씨는 우산장수와 소금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처럼 마음이 불편하다. 이번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형제의 ‘전쟁’을 가슴 졸이며 지켜봤다.

형제는 문씨와 주한미군 출신 아버지 토미 스티븐슨(61) 사이에서 태어났다. 1975년 12월 1일 서울 이태원에서 태어난 문태종은 이듬해 부모님을 따라 미국 워싱턴DC로 갔다. 세 살 터울 동생 태영과 어려서부터 집 뒤뜰에 있는 농구대에서 놀았다. 동생과 1대 1 경기를 하며 실력을 키운 그는 리치먼드대를 거쳐 미국프로농구(NBA) 입단을 노렸으나 당시 NBA 파업 여파로 프랑스리그에 진출한 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세르비아에서 연봉 30만 달러를 받던 문태종은 ‘어머니의 나라’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2010년 동생이 활약하고 있던 국내 프로농구 문을 두드렸다. 형제는 고등학교 이후 같은 리그를 뛴 적이 없었다. 유럽·북중미를 누비며 각자 프로농구 선수로 활동하던 형제는 30대에 한국에서 다시 만나 마침내 나란히 ‘코리안 드림’을 이뤘다.

문태종이 시즌 개막 전 6억8000만원의 최고 연봉을 받고 LG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해도 그의 나이를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문태종은 뛰어난 리더십으로 동료들을 이끌며 LG가 17시즌 만에 첫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형제의 우애는 남다르다. 가족끼리 수시로 만나고 경기가 없는 날엔 서로의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한다. 문태영은 “형이 MVP에 올라 자랑스럽다”며 “이 순간만큼은 형을 칭찬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로를 무척이나 아끼는 형제이지만 코트에선 봐주는 법이 없다. 승부욕도 강하다. 문태종은 “우리 팀이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해 아쉬웠다”며 “그래서 동생에게 전화하지 않고 카톡으로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LG 관계자는 “문태종은 전형적인 장남 스타일이고, 정말 가정적인 선수”라고 말했다. 이날 감독상을 받은 김진 LG 감독도 “문태종이 자기 플레이를 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팀의 중심을 잘 잡아 줬다”고 칭찬했다. 2013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된 LG 김종규(23)는 KCC 김민구를 제치고 신인상을 차지했다. SK의 베테랑 주희정(38)은 식스맨상을 받았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