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주정부시대 국정원 위상 새로 정립해야
입력 2014-04-15 03:41
수뇌부 대오각성하고 정보·수사 역량 강화하라
검찰이 발표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 수사 결과는 예상됐던 수준이다. 국가정보원이 대공수사 능력과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고 국가적 망신까지 당했으나 남재준 원장 등 국정원 수뇌부는 처벌을 비켜갔다. 이모 대공수사처장(3급) 등 4명의 중간 간부와 국정원 협조자를 기소하거나 시한부 기소중지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그래서인지 국정원은 내심 안도하는 분위기다.
검찰의 수사 대상이 국정원인데다 범행의 상당 부분이 중국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윗선에 대한 수사를 본격적으로 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그러나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후 무려 59일 동안 진상조사, 혹은 수사한 결과이니 만큼 최고위층 개입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발표는 일단 믿는 게 옳다고 본다.
수사 결과 국정원의 대공수사 실무 최고책임자에 속하는 대공수사처장이 본부와 중국 현지에서 조직적으로 간첩 증거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난 점은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 수사 중에서 간첩 수사가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다. 조직의 일망타진을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걸고 비밀공작까지 해야 한다. 그래서 간첩 혐의자를 체포하거나 수사하는 과정에서 실패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없는 사실을 조작하거나 확인된 사실을 은폐하는 행위는 민주국가에서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다.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국정원은 창설된 지 50년이 넘은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느냐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국 경쟁 정보기관들에도 치부를 드러냈기에 더더욱 안타깝다.
그렇다고 국정원이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대공 최첨병 기관이기에 다시 일어서야 한다. 북한의 각종 도발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급변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탈북자와 취업 재외동포를 가장한 간첩 혐의자는 꾸준히 입국하는 상황이다. 국정원은 이번 기회에 대공 정보·수사·공작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정원 최고위층의 대오각성과 쇄신이 선행돼야 한다.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이 14일 대국민 사과성명 발표와 함께 증거 조작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고 청와대가 이를 즉각 수리한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에 인적 개편을 포함한 전면적인 쇄신 요소가 없는지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 스스로 변하겠다던 국정원의 셀프개혁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간첩사건 수사 및 공소유지를 담당했던 검사 2명에 대해 증거위조를 인지하거나 관여한 점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나 국민적 의혹이 여전한 만큼 대검 차원의 철저한 감찰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 의혹이 제기되면 특검 도입은 불가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