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교수의 백혈병 이야기] 1995년 국내 첫 비혈연간 조혈모세포 이식… 국내 기증자도 늘어

입력 2014-04-15 02:50


백혈병 환자에 대한 진료와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92년 5월 무렵이다. 3년 3개월의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혈액내과 임상강사로 백혈병 환자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 여의도성모병원 혈액내과는 다양한 유전자 분석 기술을 활용한 분자유전학을 백혈병 치료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던 때다. 자연스럽게 ‘동종 이식 후 생착이 성공적으로 돼 공여자의 혈액을 잘 만들고 있는지’를 유전자증폭기술(PCR)을 이용해 확인하는 ‘유전자 지문검사(DNA fingerprinting)’ 실험 기술을 응용하는 연구로 박사 학위를 준비하게 됐다. 유전자 지문검사는 오늘날 친자 감별이나 법의학 분야에서 혈흔이나 타액을 이용해 범인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이 기술은 이식 환자의 생착 여부 평가와 재발 여부 판단에 활용한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의 진실성 공방에서 중요한 이슈가 된 이 유전자 지문검사는 생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전에 사용되던 혈액형 검사, 성 염색체 검사보다도 약 1000배 더 예민하게 이식 후 환자의 혈액 속에 있는 혈액 세포가 공여자의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이다.

당시에는 분자유전학과 면역학의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시기다. 실험실에서의 바쁜 생활을 이어가던 중 그 해 여름에 카이스트 분자생물학 교실의 유욱준 교수님이 임상 의사들을 위해 만든 ‘분자생물학 실험 캠프’에 참여하게 됐다. 매일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분자유전학 실험을 통해 분자유전의 기술이 백혈병의 진단과 치료에도 중요하게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병원으로 돌아와서는 실험실에서 야전 침대를 깔아 놓고 선배들과 밤새 백혈병 관련 유전자 분석 실험에 빠져 있었다. 당시에 진행했던 실험을 통해 급성림프구성백혈병과 악성림프종의 진단과 치료 평가에 중요한 T-세포 및 B-세포 항원 유전자 증폭기술, 급성전골수성백혈병의 발병에 중요한 PML-RARα 유전자 증폭 기술을 도입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유전자 분석 기술들은 백혈병 환자 진단, 치료 효과 평가, 재발 확인에 유용하게 사용됐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2년간의 임상강사를 마치고, 1994년 개원을 앞두고 있던 삼성서울병원으로 근무지를 바꿨을 때다. 국내에서는 시행된 적이 없던 제대혈이식,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조혈모세포를 이용한 비혈연 간 이식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1995년 10월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 2명에게 국내 최초의 비혈연 간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국내 조혈모세포 기증자은행에는 2000여명의 기증자만이 등록돼 있었던 터였다. 가족 간 이식항원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다른 기증자를 찾기는 아주 어려웠다. 이 때문에 많은 환자이식항원이 일치하는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반복되는 복합항암요법만으로 겨우 생명을 연장하고 있어야 했다.

국내에서도 비혈연 간 이식이 성공했지만 적절한 기증자를 찾지 못해 많은 백혈병 환자들이 절망에 빠져 있었다. 이 시점에 미공군사관학교 생도였던 한국인 입양아 성덕 바우만을 살리기 위한 조혈모세포 기증 캠페인으로 2만명 이상의 건강인 기증자를 확보하게 돼 우리나라에서도 비혈연 간 조혈모세포이식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성덕 바우만 살리기 캠페인은 ‘일반 국민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의학 기술의 확산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긴 우리나라의 조혈모세포이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