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노트] (15) 카디건, 말 잘 듣는 겉옷

입력 2014-04-15 02:31 수정 2014-04-15 11:04


초등학교 시절 투실투실했던 나의 몸이 제일 반기던 겉옷은 카디건이었다. 살집만큼 늘어나는 니트를 걸치면 살찌지 않은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직까지 잊을 수 없는 이름, ‘모라도’ 니트의 품 안에 기거하면 성숙해지는 것 같았고 뭔가 멋진 것이 내게로 오는 듯했다. 그렇게 시작된 카디건과의 동거는 이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카디건을 예뻐하는 이유 몇 가지. 하나, 재킷을 가져나가는 것이 부담이 될 때 말랑한 카디건은 모나지 않은 대체품이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 겉옷을 벗어야 할 때 허리에 두를 수 있는 카디건은 재킷보다 실용적이다. 여행 짐을 꾸릴 때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둘, 허리에 둘러 묶은 카디건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느슨한 것이 편해 보여 좋고 엉덩이를 가려주니 감사하다. 셋, 아침과 밤, 아이와 할아버지, 티셔츠와 드레스, 봄과 겨울, 사무실과 파티 등 시간과 계절 장소 연령을 가리지 않는 헌신적인 활약이 기막히다. 넷, 코디네이션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부드러운 품성의 니트는 옷의 매치를 원활하게 이끈다. 초록색 카디건을 예로 들어보자. 민트색 원피스에 초록색 카디건과 초록색 재킷을 더한 각각의 차림을 비교하면 전자의 어우러짐이 자연스럽다. 카디건의 유연한 성질은 쇼킹한 색상을 누그러뜨리는 일면을 갖는다.

카디건 백작은 알았을까. 1850년대 크림전쟁 당시 입고 있던 스웨터가 답답했던 나머지 앞판을 반으로 가른 그의 발명품이 먼 미래에 옷장 속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할지.

김은정(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