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홍성욱] 창조경제를 위한 과학과 기술

입력 2014-04-15 02:29


“정부출연연구소가 기초연구와 산업의 요구 이어주는 효율적 매개체 역할해야”

19세기 영국 물리학자 맥스웰은 그의 선배 과학자인 패러데이의 전자기 발견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결과 하나를 얻어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전자기의 장(場)이 공간을 메우고 있는 상태에서 장의 교란이 마치 파동처럼 전파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 파동의 전파 속도를 계산해 보니 빛의 속도가 나왔다. 그의 이런 이론적 예측은 20년이 더 지난 뒤 독일의 물리학자 헤르츠에 의해 실험적으로 검증되었다. 전자기파가 발견된 것이었다.

이 위대한 발견의 주인공인 헤르츠는 30대 이른 나이에 요절했다. 그의 부고는 유럽 여러 잡지에 실렸는데, 이를 읽던 이탈리아의 한 젊은이가 맥스웰이 예측하고 헤르츠가 발견한 전자기파를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는 2년간의 노력 끝에 무선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기술을 발명했고, 특허를 신청했다. 짐작하겠지만 이 청년이 마르코니였다.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30년 뒤 마르코니의 무선전신으로 이어졌고, 이렇게 과학은 산업에 기여했다.

이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과학이 산업에 기여하는 방식은 기술이 산업에 기여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제품을 낳고, 이런 새로운 제품은 기존 산업을 확장한다. 공학은 인공물에 대한 탐구로서, 공학자들의 연구는 산업이 필요로 하는 문제를 해결한다. 기업에서 이공계 전공자들을 고용하는 이유는 산업이 요구하는 문제의 해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과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해서 자연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자연에 숨겨진 힘을 드러낸다. 그런데 가끔은 이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기술적 응용이 만들어진다. 20세기의 X선, 방사능, 원자력, 레이저, 유전자재조합, 홀로그래피, 반도체와 초전도체, 나노소재 등이 과학 연구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탄생한 기술적 응용의 사례들이다. 과학은 기존의 산업이 요구하는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의 씨앗이 되는 ‘급진적 혁신’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미래의 성장동력이나 전략 기술은 어렵지 않게 찾아지고 선정될 수 있지만 기술과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과학 분야를 선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과학이 산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거의 항상 예측을 벗어나는 영역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특정한 과학 분야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보다 최대한 넓게 지원해야 하는 필요도 여기에서 나온다.

과학도 어느 정도의 하향식(top-down) ‘기획’은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 이런 대형 기획 과제는 국가적 발전 전략과 연계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 중 이런 하향식 기획 과제가 주가 된다면 문제가 있다. 이런 구조는 창의적인 개인 연구를 질식시킬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유도하는 데에도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망 기술을 정하고 이에 관련 있는 과학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은 과학이 거의 항상 예측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새로운 산업기술의 원천이 되어 왔다는 점을 간과하고 과학을 계획경제 속에 억지로 집어넣으려는 시도에서 나오는 정책이다.

물론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 연구개발비가 1조원이 훨씬 넘어가는 상황에서 과학자들의 호기심만을 충족하기 위해 이 돈을 써야 한다고 하기는 힘들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초연구와 산업의 요구를 이어주는 효율적인 매개체인데, 우리나라가 독특하게 가지고 있는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가 이런 일을 하는 기관으로 전환될 수 있다. 출연연은 대학의 기초연구에서 산업적으로 응용 가능한 연구를 찾아내어 이런 연구들을 기업이 고민하는 혁신에 맞는 형태의 기술로 탈바꿈시키는 중간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있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의 융합을 통해 창조경제를 구현하겠다는 현 정부의 전략을 위해서도 과학이 경제에 기여하는 방식과 기술이 경제에 기여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융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죽도 밥도 아닌 결과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홍성욱(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