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도박·알코올·약물… 4대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 "시작은 게임이었다"

입력 2014-04-14 03:17


‘게임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때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진짜 살아 숨쉬는 곳은 여기가 아니다. 지구의 공기는 게임 세계가 펼쳐진 모니터 안에만 존재했다. 현실은 오히려 숨 막히고 공포스러울 뿐이다. 잠시라도 현실로 돌아오면 못 견디게 외롭고 무서웠다.’

권재혁(가명·24)씨는 10대 후반 게임 중독에 빠졌던 때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게임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권씨는 인터넷 게임에서 위안을 얻었다. 게임 속의 그는 기사(騎士)도 됐고 마법사도 됐다. 누군가를 구하고 괴물을 무찔렀다. 실제 생활에서 느끼기 힘든 성취감에 들떴다.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몰입은 집착이 됐고 결국 중독에 이르렀다. 72시간 동안 잠도 안 자고 제대로 먹지도 않고 게임만 하는 그를 부모는 이해하지 못했다. 18세에 집을 나와 돈이 떨어질 때까지 PC방에서 게임만 했다. 갈 곳이 없어져 찾은 청소년 쉼터에서도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았다. 쉼터 아이들에게 돈을 빌려 PC방에 다녔다.

권씨는 쉼터 활동가의 도움으로 중독 상담을 받았다. 10여 차례 상담하며 조금씩 나아졌다. 게임 문제를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지만 집으로 돌아갔고 22세에 군 입대를 했다. 그리고 권씨의 삶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군대에서는 게임을 할 수 없었다. 미칠 것 같았다. 대신 술에 빠졌다.

10대 때 사흘 밤낮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만 했던 권씨는 술도 그렇게 마셨다. 몇날 며칠 폭음을 이어갔다. 제대 후 다시 집을 나왔다. 한 달 중 절반은 게임과 술에 빠져 피폐한 삶을 살았고 나머지 시간은 아픈 몸 누일 곳이 없어 노숙인 쉼터를 전전했다.

권씨도 지독한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 청소년 쉼터에서 권씨를 상담했던 관동대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수 교수는 우연히 노숙인 쉼터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권씨는 김 교수에게 “몸이 아파 살기 힘들다. 게임 중독과 알코올 중독을 동시에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 교수는 “10대 중반에 시작된 과도한 게임이 뇌의 중독중추를 걷잡을 수 없이 활성화시켜 게임 중독이 알코올 중독으로 진행된 사례”라며 “너무 어린 나이에 중독의 길로 유혹하는 게임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독 인구 618만명, 중독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 109조5000억원. 우리나라는 국민 8명 중 1명이 중독에 빠진 ‘중독국가’다.

이 문제를 연구해 온 중독포럼은 게임, 도박, 알코올, 약물 등 ‘4대 중독’에 대한 국가 종합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중독포럼 이해국 상임연구위원(가톨릭대 의대 교수)은 13일 “중독의 폐해는 범죄와 질병으로 이어져 중독자와 가족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결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