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무기 폐기 거짓?… 시리아서 또 독가스 공격

입력 2014-04-14 02:07


화학무기 폐기 절차가 진행 중인 시리아에서 보란 듯이 독가스 공격이 벌어졌다. 정부와 반군은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 사건을 놓고 서로 상대방 소행이라며 비방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 소행으로 드러난다면 미국 등 서방이 지난해 유보한 시리아 공격 카드를 다시 꺼내들 가능성이 있다.

독가스 공격은 서부 하마주(州) 카프르 지타 마을과 북부 이들리브주 알 타마나 마을에서 지난 11일(현지시간) 저녁 발생했다. 둘 다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이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 인권관측소(SOHR)는 정부 소속 헬리콥터들이 당시 카르프 지타 마을에 ‘통폭탄’을 투하했다고 발표했다. 통폭탄은 기름통에 폭약을 채워 만든 임기응변식 무기다.

현지 반군은 마을에 폭탄이 떨어진 뒤 염소 냄새가 나는 연기로 짙게 뒤덮였다고 전했다. 염소 가스는 조금만 들이켜도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맹독성 가스다. 흡입량에 따라 30분 만에 죽을 수 있다. 반정부 단체인 시리아 지역조정위원회(LCCS)는 카프르지타에서만 최소 6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반군 측이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에는 이동식 진료소로 옮겨진 사람들이 괴로워하며 몸을 뒤틀거나 정신을 잃고 쓰러진 모습이 담겨 있다. 일부는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거나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침상에는 널브러진 아이들도 보였다.

13일에는 호흡곤란에 시달리는 알 타마나 사람들이 치료 받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게시자인 반군 측은 정부 공격 탓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시리아 국영 TV는 카르프 지타에 대한 독가스 공격 사실을 긴급 뉴스로 전하며 알카에다 연계 반군인 알 누스라 전선의 소행이라고 보도했다.

TV는 2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중독됐다고 전했다. 또 반군이 이들리브주 와디 알 디프와 하마주 모레크에서도 염소나 사린가스를 이용한 공격을 준비 중이었다고 덧붙였다. 와디 알 디프는 정부군 기지가 있는 곳으로 반군 지역에 둘러싸여 있다.

정부와 반군 양측이 화학무기 사용 사실을 인정한 공격이 발생하기는 지난해 8월 21일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수백명이 숨진 이후 처음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당시에도 누가 벌였느냐를 놓고 진실 공방이 벌어졌었다. 미국 등 서방은 시리아 정부 소행으로 결론짓고 군사 공격을 추진했다.

시리아는 유엔 산하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관리 아래 화학무기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과 러시아가 도출한 중재안에 따른 것이다. OPCW는 최근 보고서에서 “시리아가 현재 접근 불가능한 지역을 빼곤 13일까지 화학무기 전량을 제거하기로 약속했다”고 전했었다.

이번 사건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폐기 절차를 무색케 만든다. 정부가 뒤에서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하며 국제사회를 기만했든 반군이 정부 비방을 위해 화학무기 공격을 벌였든 마찬가지다. 내전이 계속되는 한 언제든 화학무기 공격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리아 정부가 또다시 독가스 공격의 배후로 드러난다면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 포기 의사를 밝힌 뒤에도 군사 개입 방안을 완전히 접지는 않겠다며 여지를 남겼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