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명분과 대의로써 對日문제 풀자

입력 2014-04-14 02:48


“인류 본연의 가치에 근거해 문제 제기하되 감정적 비난은 피하는 게 낫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세력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중국·러시아와 미국·일본의 대립구도에서 두 세력, 네 국가가 쏟아내는 중압감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현재 한국은 한·미·일 그룹의 일원이지만 탈냉전 이후 중국과의 외교에 각별히 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일 관계가 꼬이면서 기존의 한·미·일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에 있다. 아베 정권의 여러 행보, 즉 야스쿠니 신사 참배, 과거사 부인, 독도 자국 영토 주장, 고노·무라야마 담화 계승 부인(현재 공식적으로는 이를 계승하겠다는 입장임) 등으로 한국의 반일감정은 커질 대로 커졌다.

한국의 대일 전략이 스테레오 타입을 못 벗고 있는 점도 걸리는 대목이다. 늘 그렇듯 일본 정부의 망언이나 과거사 도발이 벌어지면 한국은 모든 구성원이 한목소리로 일본을 비난하고 미디어마다 일본의 관련자들을 훈계하고 비난하는 논평을 퍼붓는다.

지난 4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초교 5·6학년생용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 데 대해서도 대응은 비슷했다. 검정 교과서에 ‘한국에 의해 독도가 불법 점거(점령)돼 있다’고 기록된 부분에 대해 한국 정부와 언론들은 일본에 거세게 항의하고 비판 공세를 폈다. 여기까지는 분명 의미가 있다. 다만 일부 미디어 등에서 제기한 것처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지적하거나 “아이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는 민족은∼” 식의 보도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반한 감정을 키울 수 있다.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되 감정적 비난은 피하는 게 낫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식민지시대 단재 신채호 선생이 망국의 현실에서 아픈 우리 역사를 기억하라는 내향적 경구였지 외부를 향한 비판 슬로건이 아니다. 우리가 일본의 미래를 운운하는 것은 사족에 가깝다. 일본이 정도를 걷기를 바라지만 그건 철저하게 그들의 문제다.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일본군위안부, 징용자 문제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임해야 한다. 예컨대 20여년 전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져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둘러싸고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했을 때 당시 김영삼정부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3년 3월 13일 김영삼정부는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은 계속하되 일본에 대해 금전적 보상은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으며 지원은 자체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에겐 일시금 500만원과 생활보조금, 의료비, 영구임대주택 등이 지원됐다(김대중정부는 98년 4300만원의 일시금을 추가 지원했다). 자구책을 앞세운 김영삼정부의 대일 압박은 그해 8월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담은 고노 담화, 97년 일본 민관 공동기금인 ‘아시아여성기금’ 탄생을 촉발시켰다. 아시아여성기금이 갖는 한계는 있었으나 일본이 적극적으로 반응한 건 확실하다.

강제징용자 보상 문제에 대해서도 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한국 정부가 징용자 개개인을 대신해 보상금을 받았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실제로 그간 한국 정부는 징용자 보상을 미흡하나마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입장을 보여왔다. 75년 1차 민간 보상에 이어 2005년 이후 2차 민간 보상이 진행 중이다.

2012년 이후 한국의 대법원을 비롯한 법원이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강제징용자 개인 보상 판결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준 배경은 65년 한일기본조약의 태생적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한일기본조약이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불법·합법 여부를 정확하게 가리지 않은 채 서둘러 체결된 탓이다. 그런데 49년이나 지난 지금 조약수정을 요구할 텐가. 그게 아니라면 한국 정부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징용자 보상은 한국 정부의 몫임을 재확인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한편 한일기본조약 당시 논의되지 않았던 일본군위안부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명분과 대의로써 협상에 임해야 한다. 인류 본연의 가치에 근거해 일관성을 추구할 때 우리의 대일 문제 해법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