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국가’ 대한민국] 혼자 식당일로 고이 키운 아들, 어느 날 엄마에게 손찌검을…

입력 2014-04-14 02:29

40대 여성 A씨는 이달 초 중학교 3학년 아들과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소를 찾았다. A씨는 겁에 질려 있었다. 벌써 몇 차례 아들에게 맞았다. 아들은 인터넷게임을 못하게 말리면 욕을 하며 엄마를 때렸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계속되니 무서웠다.

상담소에 가기까지 A씨는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아들이 망가진 게 자기가 살뜰히 돌보지 못한 탓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두 아이를 키웠다. 조금이라도 더 벌려면 밤늦도록 일해야 했다. 저녁상을 차려놓고 나가 식당일을 하고 돌아오면 새벽이었다. 아들이 A씨의 빈자리를 게임으로 채워나간 것 같았다. 자식을 방치한 몹쓸 부모라는 자책이 마음을 짓눌렀다. 혹시나 상담소에서도 자신을 손가락질할까 두렵기도 했다.

A씨가 용기를 낸 건 딸 때문이었다. 아들은 엄마를 때리지 않으면 초등학생 여동생을 구타했다. 처음 폭력을 썼을 때 아들은 곧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자꾸 반복되면서 후회나 반성도 사라졌다. 공부도 곧잘 하고 착하기만 했던 아들의 변화가 믿기지 않았지만 현실이었다. 온종일 게임만하고 게임을 못하게 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들의 모습을 A씨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배주미 팀장은 “A씨 같은 경우는 전혀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게임에 중독된 아들에게 폭행당해 상담소를 찾는 경우는 상담 사례의 절반쯤 될 만큼 흔하다는 것이다. 배 팀장은 “A씨처럼 자책하는 부모들에게 ‘너무 그러지 마시라’고 이야기해준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한부모·조손·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이 인터넷게임 중독에 취약한 편이라고 말한다. 이런 가정에서는 주된 양육자가 밤늦도록 일하거나 아이들을 충분히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마땅히 놀거리, 공부거리를 찾지 못하면 인터넷게임에 쉽게 빠져든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정부가 발표한 ‘2012년 인터넷중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인터넷 중독률은 한부모가정 청소년(11.8%)이 양부모가정 청소년(10.6%)보다, 다문화가정 청소년(12.3%)이 그렇지 않은 경우(10.6%)보다 높았다.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한부모·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인터넷중독 취약계층으로 확인된 것이다.

배 팀장은 “청소년의 인터넷게임 중독은 부모에게 자녀를 잘못 키웠다는 ‘낙인’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질 때까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무엇보다 취약계층 청소년이 중독에 빠지기 전 예방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