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국가’ 대한민국①] 뇌 쾌락중추 고장… PC방 죽돌이, 술독에도 쉽게 빠져
입력 2014-04-14 02:29
①게임, 연쇄중독으로 가는 문
인터넷게임·도박·알코올·마약(약물)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4대 중독’으로 꼽힌다. 4대 중독에 의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109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독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흡연(10조원·국민건강보험공단 추산)이나 암(14조원·국립암센터 추산)에 의한 사회경제적 비용과 비교하면 8~11배 높다. 중독 문제를 계속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날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중독은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중독 성향을 갖게 되면 다른 중독에 빠지는 건 더 쉬워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잇따라 새로운 중독을 경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형준(가명·33)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게임에 중독됐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시작했다가 점점 빠져들며 게임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씨는 게임 중독 때문에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두 차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중독 성향은 없어지지 않았다.
박씨는 이제 알코올 중독자다. 대학 졸업 후 조리사자격증을 따서 식당에 취직했지만 알코올 중독이 문제가 돼 수차례 해고를 당했다. PC방에서 게임하며 가볍게 술을 마시기 시작한 뒤부터 술기운이 오르면 본격적으로 폭음을 하는 게 이제 그의 일상이 됐다. 박씨는 “술을 마시면 게임만큼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금방 기분 전환이 되고 훨씬 강렬하다”고 말했다.
관동대 명지병원 김현수 교수는 “박씨가 마음을 다스리려고 게임이 주는 보상에 의존했던 것이 이제는 알코올에 의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며 “10대 시절의 게임 중독이 중독생활의 뿌리가 됐다”고 설명했다.
40대 가장인 최병우(가명)씨는 심심풀이로 인터넷게임을 시작했다가 도박 중독에 빠진 사례다. 우연히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알게 되면서 중독의 늪에 빠졌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인터넷 도박에만 열중했다. 인터넷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경마 경정 경륜까지 손을 댔다. 결국 이혼 위기에 놓이고서야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씨는 아내와 3개월 동안 인터넷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유혹이 될 만한 모든 것을 멀리하고 있다. 그는 “컴퓨터만 봐도 또 빠져들 것 같아 PC방 근처도 가지 않고 스마트폰도 안 쓴다”면서도 “게임과 도박은 매우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 (인터넷게임에) 중독성이 없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게임 중독, 연쇄 중독의 시작=술 도박 약물과 달리 인터넷게임은 아동·청소년에게도 법적으로 허용된다. 밤 10시 이후 PC방 출입금지나 자정 이후 게임을 못하도록 막는 ‘셧다운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게임 자체를 중독 행위로 규정하며 적극적으로 관리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게임업계와 문화계를 중심으로 게임과 중독의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게임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1월 대만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을 보면 과도한 인터넷 사용이 음주로 이어지는 ‘중독의 연쇄성’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2000년 16세 청소년 1468명의 인터넷 사용 실태를 조사한 다음 4년 뒤 20세가 된 이들의 음주 여부를 추적 조사했다.
결과는 16세 때 PC방을 드나들며 학업과 무관하게 인터넷을 이용했던 청소년들의 고위험 음주율이 PC방 출입을 하지 않았던 경우보다 2.7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468명 가운데 25.9%는 20세가 되면서 술을 마시게 됐고 이 가운데 16% 정도는 한 달에 3번 이상 과도하게 술을 마시는 고위험 음주군에 속했다.
가톨릭대 의대 이해국 교수는 “청소년기에 오락 목적으로 인터넷을 지나치게 사용하는 것이 지나친 음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경제 수준이 비슷한 데다 밀집된 도시에 거주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중독자의 ‘뇌’는 닮았다=모든 중독자의 뇌는 중독 물질이나 행동을 접할 때 비슷하게 반응한다. 정상인의 뇌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반면 중독자의 뇌는 전두엽의 쾌락중추가 급격히 활성화된다.
정신의학 연구저널에 발표된 2009년 논문에 따르면 게임중독자에게 게임 관련 사진을 보여주면 뇌의 쾌락중추 활성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 부위는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자에게 술이나 마약 사진을 보여줬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와 비슷하다. 게임과 같은 행위도 중독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의학적으로 보여주는 연구 결과였다.
뇌의 쾌락중추가 고장 나면 조절력을 잃게 된다. 중독의 연쇄성은 이런 이유로 일어난다. 이 교수는 “게임 중독으로 10대부터 쾌락중추가 활성화되면 평생 중독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며 “어린 시기에 중독에 빠뜨리는 게임 중독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