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는 중대 범죄] 한국 친권자 무소불위 권리… ‘아이 내놓으라’ 요구 거부못해

입력 2014-04-12 03:36


엄마 없이 아빠와 살던 초등학생 두 자매는 수년간 아빠로부터 손찌검과 욕설, 성추행을 당했다. 먹고 씻는 걸 살피는 이도 없었다. 아버지는 아동학대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2∼3년 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버지였다. 그는 “내 애들 내놓으라”고 말했다.

“아직 나올 때가 아닌데, 너무 놀랐죠. 알아보니 그날 모범수로 조기출소했다더군요.” 자매를 상담했던 김경희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은 즉시 가해자 아버지에 대한 친권상실 및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냈고 접근금지명령을 받아냈다. 자매는 여러 면에서 운이 좋았다. ‘다행히’ 학대자가 전화를 걸었고 내용을 아는 상담원이 아이들을 챙겼다.

이런 행운이 늘 있는 건 아니다. 형 집행 및 가해자 출소 정보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통보되지 않는다. 그래서 학대자가 출소했을 때 여전히 미성년자인 아이들은 친권을 가진 학대 부모의 손에 되돌아간다. “보호해주겠다”던 어른들 말은 그렇게 지키지 않는 약속이 되곤 했다.

울산에서, 칠곡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온 사회가 경악으로 들끓지만 손쉬운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친권·가족 같은 전통적 가치와 아동보호라는 목표가 충돌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전국 51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대의 1차 적발기관이지만 현장 상담사들은 “적발이 이뤄진 뒤에도 학대자이자 친권자인 부모를 제재할 수단이 많지 않다”며 답답해했다.

12년 넘게 아동학대 사례 관리를 해온 서울의 한 상담원은 학대아동의 사후 모니터링을 위해 집으로 찾아갔다가 거절당한 사연을 전했다. 부모는 “네 자식이나 잘 키워라”며 현관문을 닫아걸었다. 어쩔 수 없이 학교로 찾아갔다. 이번에는 교사가 난감해했다. 아이가 집에 가서 “기관 선생님을 만났다”고 말한 뒤 부모가 학교에 찾아와 “고소하겠다”며 소동을 피운 것이다. 교사는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지만 의무보다는 ‘학부모 항의’를 더 무서워했다.

이런 적반하장의 상황은 아동보호기관이 내리는 아동학대 판정의 구속력이 없는 탓에 벌어진다. 학대 판정을 받은 부모는 상담·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거나 ‘다시는 학대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 하지만 법적 강제력이 없다. 거부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또 다른 상담원은 “학대자인 아버지가 아예 식칼을 상 위에 올려놓고 ‘어디 말해보라’고 말해 그 상태로 상담을 한 일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가정방문에서 가해 부모가 가재도구를 집어던지거나 욕설을 하는 건 비일비재했다. 경남에서는 가해 아버지가 자녀 격리 후 기관에 불을 질렀고, 인근 지역에서는 상담원이 학대 부모가 휘두른 흉기에 머리를 강타당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에서 유아인도청구소송을 낸 학대 어머니가 법정에서 상담원을 폭행했다. 상담원은 휴직 상태다.

이순기 굿네이버스 복지사업부장은 “비공개 격리를 시켜도 부모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강제로 데리고 간다. 친권자여서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오는 9월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이 발효되면 아동에 대한 응급조치와 학대자에 대한 긴급임시조치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상담원들은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일시적으로라도 친권을 제한할 방법이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대 부모들에게 교육 및 상담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겼을 때 처벌하는 조항도 빠졌다. 2001∼2012년 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97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확인한 숫자만 이 정도였다.

이영미 황인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