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전권 소재 서화전 연 이은순 권사 “은혜 담긴 먹의 향기… 온갖 시름 잊혀져요”

입력 2014-04-12 02:38


1000여일. 이은순(56) 선린교회 권사가 ‘임마누엘 서화전’을 준비한 시간이다. 약 1.2㎞. 이 권사가 붓글씨를 쓴 한지를 이을 때 나온 길이다.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전권을 소재로 글을 썼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준비했기 때문에 성경 전권을 소재로 삼았다”고 했다. 1978년 서예를 시작한 그의 첫 개인전이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이 권사를 최근 만났다. 지난달 27일까지 그의 작품 260여점을 전시했던 곳이다.

30년 넘게 붓을 든 한 기독 서예가의 혼(魂)이 담겼을까. 사순절 기간 중 열흘 동안 열린 전시에는 세 차례 이상 방문한 사람도 제법 있었다. 이 권사는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며 붓을 들었다”며 “붓이 종이 위에서 춤을 추는 느낌이 든 적도 있고,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며 눈물을 줄줄 흘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볼펜이나 연필을 사용하는 경우도 드뭅니다. 붓글씨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붓이 종이 위에서 천천히 움직일 때 그 촉감이 참 좋습니다. 천천히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붓을 따라 묵상을 하게 됩니다. 먹의 향기도 기가 막힙니다. 먹에는 솔향기나 향나무 향이 섞이기도 하고 사향이 들어가기도 해요. 글씨에 집중하면 온갖 시름이 절로 잊혀집니다.”(미소)

-평생 붓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처음 어떻게 서예를 시작하셨나요.

“전 가난한 시골 농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8남매 중 일곱째였지요. 공부를 퍽 잘했는데 제때 상급학교에 진학하질 못했어요. 직장 다닐 때 동료를 따라 처음 서예학원에 갔어요. 그 친구는 금세 붓을 놨지만 전 계속 붓을 들었어요. 붓은 제게 ‘배움’ 그 자체였기 때문이에요.”

결혼 후 중문학을 공부하고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박사 학위논문은 ‘소식(蘇軾·1037∼1101)의 미학 사상’이었다. 그는 첫 전시와 함께 ‘임마누엘 서화전’ 책을 냈다.

“시아버지 모시고 두 아이 키우고 서예학원 운영하고 공부도 하고…. 힘든 때도 참 많았는데 하나님 은혜로 여기까지 왔네요. 가족들도 많이 도와줬어요. 박사 과정 합격 소식을 들은 날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많이 울었어요.”

-성경 전권을 소재로 한 대형 전시는 어떻게 계획되었나요.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이 큰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고민했어요. 첫 서화전을 하나님 앞에 드리면 좋겠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먼저 시편 전편을 썼어요. 꼬박 1년이 걸렸어요. 성경 전체를 소재로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전시가 선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매우 기뻤어요.”

이 권사는 성구를 뽑았고 모형작품을 만들었다. 모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기도했다. 기도 중 영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나온 작품도 여러 점 있다.

-작품마다 서체가 다르고 구성이 다양합니다. 어떤 작품이 기억에 남으세요.

“엘리 엘리 라마(막 15:34) 작품을 할 때는 한여름이었는데 일부러 냉방기를 끄고 썼어요.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려고요. 40도 가까운 폭염 속에 땀이 비 오듯 내렸어요. 힘들더라고요. 이렇게 작은 고통도 나는 감당하기 힘든데 예수님은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허리는 창에 찔리셨지요. 눈물이 줄줄 흘렀어요.”

-3년 넘게 준비하는 동안 어떤 게 가장 힘드셨나요.

“힘들기보다는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성경 한자 한자 옮기면서 말씀이 새록새록 제 속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재료비가 많이 들었어요. 1.2m 길이 한지 1000여장을 썼어요. 먹은 20개 넘게 들었고요. 호세아(14:5∼7)는 여러 가지 서체로 20장 넘게 썼습니다. 사흘 동안 작업했어요. 힘든 점이 있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근심하지 말라(요 14:1∼3)는 말씀을 주셨어요.”

-이번 전시에는 만족하시나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어떤 분이 ‘목사님 설교보다 이 전시가 더 낫습니다’고 하셨어요. 과찬인 줄 알지만 뿌듯했어요. 앞으로 5년 주기로 서화전을 열고 싶어요. 이번이 1탄이고 할 수 있다면 100탄까지 하고 싶어요.”

-그럼 500년이 걸리겠네요.

“아, 그러네요(웃음). 계속 열심히 하겠다는 이야기예요.”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