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開花 순서
입력 2014-04-12 02:32
3월엔 산수유(15일), 매화·진달래(20일), 살구(24일), 벚(29일), 자두나무(31일). 이어 4월엔 산벚(1일), 조팝(7일), 배나무(8일)…. 올해 여의도공원에서 기자가 관찰한 꽃나무들의 꽃을 피운 순서와 시기다. 사무실이 서울 여의도공원 부근인 덕분에 거의 매일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 지난해의 경우 매화는 4월 1일, 진달래 2일, 살구꽃 8일, 벚꽃 15일 등으로 개화(開花)시기가 올해보다 훨씬 더 늦었다. 그 해 여의도 봄꽃 축제는 벚꽃 없이 12일 시작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봄 서울에서는 벚꽃(3월 28일)이 진달래(23일), 개나리(25일)와 거의 같이 피었다. 2010년까지 30년간 평균(평년) 개화일보다 각각 13일, 6일, 3일씩 앞당겨진 것이다. 기상청은 서울의 벚꽃 개화시기를 평년보다 늦은 4월 11일로 예상했었다. 올해는 3월 하순 기온이 예상과 달리 평년에 비해 크게 높아졌기 때문에 그 시점부터 개화 속도가 갑자기 빨라진 것이다.
이런 동시 개화현상은 도시 나무들의 자연적응력이 낮아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숲 속에서 키 순서대로 교목, 아교목, 관목, 초본류 등 다양한 식물 종들은 꽃 피우는 시기를 서로 달리함으로써 각기 다른 중매수단과 독특한 생활사를 형성한다. 그런데 이 나무들이 일제히 개화하면 벌과 나비의 출현시기와 엇갈릴 수 있다. 꽃은 피었지만 꽃가루를 옮겨주는 곤충이 없어 씨앗이 적게 생산되는 엇박자가 생기는 것이다. 알에서 깬 새끼들에게 애벌레를 먹여야 하는 새들도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져 번식을 못하기도 한다. 동시 개화는 먹이사슬에 연쇄적 영향을 미쳐 결국 종 다양성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같은 꽃이라도 개화 시기는 지역 간, 장소 특성별 편차가 크다. 여의도공원 안에서도 차량 통행량이 많은 공원 동쪽에서 꽃이 하루, 이틀 더 빨리 핀다. 공원 서쪽의 매화는 동쪽에 비해 5일이나 더 늦게 피기도 했다. 서울 안에서도 도심과 녹지, 하천 변과 하천 없는 곳이 다르다. 다행히 개화 순서만 보면 전국적으로는 대체로 잘 지켜지고 있다. 다만 식물별 개화 등고선이 유독 서울, 대전 같은 대도시를 향해 북쪽으로 불쑥 올라가 있다. 도심의 기온이 더 높은 ‘도시 열섬현상’이 꽃 피는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큰 요인인 것이다. 결국 사람의 간섭이 가장 큰 변수이자 문제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