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희망지기-정진] 생명, 누가 주신 선물인데 함부로 거두려합니까

입력 2014-04-12 02:28


마음쉼터 위드하우스 정진 권사

최근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물었다. 그러나 ‘마음쉼터 위드하우스’ 정진(58) 권사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마음쉼터 위드하우스는 자살 시도자와 유가족을 돕는, 이름 그대로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이다.

쉼터지기 정 권사는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았으면 어느 집이 자살했든 안 했든 여전히 우리는 모를 일”이라며 “예나 지금이나 성경이 말한 대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란 명제 앞에서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위드하우스에서 자살자 유가족과 자살 시도자 그리고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이들의 마음을 돌보는 정 권사를 만났다.

그는 자살자 유가족이 겪는 아픔은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갑니다.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질 수 있고 심각한 경우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쉼터를 마련하고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살자 유가족을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짧은 말 한마디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을 안고 그 역시 눈물을 쏟았다.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는 곳

2009년 1년 동안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같은 말씀을 주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하나님은 분명 “다른 사람을 위해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2010년 살던 집 2층에 마음쉼터 위드하우스를 설립했다.

위드하우스는 함께 울고 자고 쉬고 일하고 예배하고 감사하며 가족처럼 머물 수 있는 곳이다. 그 과정을 통해 회복되면 다시 자기 집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 5년 동안 위드하우스에는 60여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다.

“자세히 관찰하고 함께 보지 않으면 왜 그렇게 극한 생각을 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 필요해요. 이왕이면 가정 같은 곳, 가족이 사는 집이면 더 좋겠지요.”

지금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보다 정 권사가 직접 찾아가 가족을 만나는 이들이 많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섬기고 그 이야기를 종합해서 들으면 그 가족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루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1년 넘게 이곳에 상주한 사람도 있었다. 그가 회복돼 돌아간 후에는 오래 머물게 하지 않는다. 대출금 은행이자가 감당 안 되고, 후원자들도 많이 줄어 현재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다. 2층을 세 놓거나 집을 팔려고 내놨다. 이참에 공기 맑은 시골로 내려가 재정비하려고 계획 중이다.

위드하우스의 하루

위드하우스에선 언제나 예배를 먼저 드린다. 모두 둘러앉아서 눈을 감고 생각을 다 비운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숨쉬는 데만 집중한다. 한번 끊어지면 그만인 목숨. ‘숨’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숨을 주신 하나님을 예배한다.

아침을 먹고 텃밭에 나가 1시간씩 일한다. 자연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시간이다. 텃밭일이 끝나면 산책을 한다. 함께 집 치우고 밥하고 상 차리고 화장실 청소 등 뭐든 다 같이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우울한 생각에 빠져든다. 그래서 가급적 몸을 움직이게 한다. “행동하면 할수록 건강해지고 현재에 충실해집니다. 감사, 기쁨, 함께 명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생각을 다 비우고 나면 하나님이 숨 쉬게 하신 것이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끝으로 감사 제목을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터치한다. 하루에 세 개씩. 그러다 보면 점점 감사의 깊이가 강해지고 자연스레 감사거리를 찾는다. 이내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게 된다.

상처가 만든 두 얼굴

정 권사는 위드하우스가 들어선 이 집에 13년째 살고 있다. 담장을 낮추고 누구든 대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게 했다. 주민과 관계가 좋다 보니, 소위 안정된 주택가에서 이 같은 사역도 가능하다. 게다가 10가정이 사역에 관심을 갖고 도움도 주었다.

그는 어느 곳에서든 항상 주변 사람들과 성경공부를 하고 음식을 나누며 서로 돕고 지낸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진정 내 이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을 열고 음식을 나누고 힘들 때면 도움을 요청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는 자’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정 권사는 자신을 “상처 입은 영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고백했다. “겉으론 성실하고 정직한 크리스천이었지만 내면은 지독한 바리새인이었죠. 화가 나면 거친 말을 어린 딸에게 쏟아내다 폭력에 가까울 정도로 때렸어요. 어린시절 가정폭력을 경험한 제 내면의 상처가 결혼 후 가족들에게 그대로 표출됐어요.”

그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수없이 회개했지만 다시 반복했다. 그 사이 중학생이 된 딸은 학원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무섭다고 말하는 딸은 엄마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울면서 원망하더군요. 그제야 저는 정말 못할 짓을 아이에게 했다고 절감이 되더군요. 아이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어요. 그리고 매일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눈물을 쏟았는지 몰라요. 그렇게 마음에 담아 있던 빚을 털어내고자 애썼고 딸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자신의 두 얼굴 때문에 고통 속에 살던 정 권사는 딸에게 용서를 받은 후에야 내적치유를 받았다. 그리고 상처 입은 영혼을 찾아 나섰다.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됐다.

“제가 만약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남을 이해하고 남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가 다른 우리가 만나 살게 하시면서 모난 부분을 영글게 하시고 이제는 가족간에 사랑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정 권사는 자녀들이 한 생애를 살면서 흔적이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크리스천으로서 널리 나누는 삶, 부모가 살아온 것처럼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영향력을 키우며 살기를 기도한다.

사랑이 묘약

위드하우스를 다녀간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나은 삶, 더 자유롭고 가벼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 권사는 이들에게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다가간다. 이 사람에게 제일 깊은 문제가 무엇인지 큰 틀 안에서 생각한다.

정 권사는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로 사랑의 결핍, 가정의 붕괴를 들었다. 그런 충동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가족’이며 ‘사랑이 묘약’이다. 진짜 사랑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것이다.

“자살에 이를 땐 지적받은 것, 자존심이 무너진 게 제일 문제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아주면 그의 허물을 지적하기보다 그를 용서하고 응원하게 됩니다. 그 다음 그를 돕되 지속가능하도록 도울 길을 찾아야 합니다. 돈을 주는 게 아니라 그가 일어나서 일하러 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정 권사는 함께 지내던 이가 목숨을 끊은 가족들에게 집은 돌아가기 힘든 곳이 된다고 말한다. “떠나간 이와 자신을 용서하고 관점을 바꾸지 않는 한 두려울 수밖에 없는 곳이죠. 그런 분들에게 쉼터는 집이 되어 드려요. 오셔서 함께 지내거나 잠시 들렀다 가시는 것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만큼 자살자 유가족으로서 아픔을 털어놓을 공간과 따뜻한 위로가 절실하다는 거죠.”

현재 그는 두 가지 제목을 놓고 기도하고 있다. 이 사역이 주님이 맡기신 일이라면 감당할 수 있는 재정적 지원이 이뤄지기를, 소액의 후원금으로 쉼터를 운영하고 무보수로 밤낮 없이 일하고 있는 이곳이 활발하게 사용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정 권사가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남겼다. “지금 생명이 경각에 달린 분이 있다면 잠시 두려운 생각을 멈추고 숨을 깊게 내쉬고 들이쉬세요. 숨, 곧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