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명 학살 수단 다르푸르 지역 파병 “평화유지군 보고서 거짓투성이”
입력 2014-04-11 02:42
2012년 8월 25일 유엔-아프리카 연합 평화유지군(UNAMID) 대변인 아이차 엘 바스리는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 기자로부터 수단 다르푸르 타윌라에서 벌어지는 폭력 사태에 대한 상황을 묻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가 대변인으로 임명된 지 꼭 9일만으로 평화유지군 관계자에게 문의해 보니 타윌라 지역은 수단 정부군과 아랍 민병대가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관련 사실을 알려줬다.
다르푸르 지역에서는 2003년부터 정부와 무장세력 사이에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르푸르 사태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슬람 민병대인 잔자위드가 잔혹하게 토착민을 진압하면서 발생한 폭력을 가리킨다. 이 과정에서 3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270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2004년 9월 다르푸르 사태를 대량 학살로 규정했다. 이 때문에 2007년부터 2만5000여명의 평화유지군 병력이 주둔 중이다.
그러나 바스리가 기자에게 알려준 것과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8월 24∼27일 150대의 군용차량에 나눠 탄 수단 정부군은 주로 흑인 토착민인 푸르족이 살고 있는 타윌라 지역의 4개 마을을 공격했다. 정부군은 이들이 반군을 지원했다며 여성을 강간하고 무차별적인 약탈을 자행했다.
겁에 질린 주민은 마을을 떠나면서 평화유지군에 26일 또 다른 공격이 있을 것 같다며 보호를 요청했다. 하지만 평화유지군은 기지에서 겨우 19㎞밖에 떨어지지 않은 마을에 가 주민을 구조하는 대신 4일 동안 기지에만 머물렀다.
타윌라 지역에서 평화유지군이 폭력을 막지 못한 것은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었다. 평화유지군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침묵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실제로 같은 해 9월 5일 다르푸르의 쿠툼 마을에서 벌어진 민간인 1명 사망과 8명 부상 사건의 경우 이들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정부군과 무장 아랍 민병대의 집중 사격에 따른 것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그들 사이에 아무런 총격전도 없었다. 오히려 트럭을 타고 평화롭게 쿠툼으로 여행 가던 주민이 평화유지군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집중 사격을 받고 숨진 사건이었다. 그는 평화유지군이 이를 보고 사진만 찍었다고 주장했다.
‘왜 평화유지군이 폭력사태를 방관하느냐’는 바스리의 질문에 평화유지군 부사령관 키삼바 와이존스 장군은 “때로는 우린 외교관처럼 행동해야 한다”며 “우리가 다르푸르에서 본 것을 모두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좌절감에 임명 8개월여 만인 지난해 4월 그는 대변인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 과정에서도 왜곡은 계속됐다. 지난해 4월 18∼19일 평화유지군은 다르푸르 동부 주둔지에서 4시간 동안 두 차례 정부군의 공격을 받았다. 교전 과정에서 평화유지군 1명이 숨지고 정부군 장교도 1명 사망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정부군 장교가 평화유지군 본부에 찾아와서는 또다시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경우 평화유지군에 대한 공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했고 결국 평화유지군은 “확인되지 않은 무장세력이 평화유지군을 공격했다”는 황당한 성명을 냈다.
참다못한 바스리는 지난해 5월과 8월 평화유지군의 비위를 조사해달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유엔 사무국 감사실(OIOS)에도 정식으로 감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유엔 사무국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바스리는 9일(현지시간) 자신 명의로 외교 전문지인 포린폴리시(FP)에 관련 내용을 상세히 폭로했다. 그는 “더 이상 유엔을 대표해 거짓말을 할 수 없어 진실을 밝힌다”며 “반기문 사무총장 명의의 보고서에조차 거짓으로 가득 찬 것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아랍계 아프리카인으로 소개한 바스리는 무고한 시민이 죽어가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으며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