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니코틴 함유, 제조 결함 아니다” 담배소송 15년… 대법, 흡연자 패소 확정
입력 2014-04-11 03:02
‘담배 소송’을 진행했던 흡연 피해자들이 대법원 상고심에서 최종 패소했다. 소송을 제기했던 7명의 흡연 피해자 중 6명이 15년간의 소송 도중 폐암 등으로 숨졌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0일 흡연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등 30명이 KT&G(옛 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 2건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1999년 첫 소송이 제기된 지 15년 만에 나온 확정 판결이다.
◇“담배 제조·판매 위법 없다”=흡연 피해자들은 담배 제조와 판매는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 주장해왔다. 중독성을 유발하는 니코틴을 비롯해 각종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결함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번 담배 소송의 핵심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KT&G가 흡연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담배 설계 방식이 있는 데도 그 방식을 채용하지 않고 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흡연자들은 안정감 등 니코틴의 약리 효과를 얻기 위해 담배를 피운다. 니코틴과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체 물질은 없다. 대법원은 ‘흡연자의 기대를 충족하는 담배를 만들기 위해서는 니코틴을 뺄 수 없다’는 KT&G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흡연이 개인의 선택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흡연이 몸에 해롭다는 사실은 이미 언론 보도나 법적 규제 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해롭다는 사실을 알면서 계속 담배를 피우는 것은 흡연자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KT&G가 담배의 위해성을 은폐했다는 원고 측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KT&G의 담배 제조·판매 행위에 위법성이 없다는 말이다.
이미 2011년 항소심 재판에서 일부 인정된 흡연과 폐암 발병의 인과관계는 대법원에서도 사실상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흡연 피해자 측이 KT&G의 제조·판매 위법성 입증에 실패하면서 손해배상도 받을 수 없게 됐다. 보통 민사재판에서는 위법한 행위와 그로 인한 피해가 동시에 인정돼야 배상을 받을 수 있다.
◇건보공단 “KT&G 위법성 입증 자신 있어”=대규모 담배 소송을 준비 중인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은 향후 소송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쳤다. 안선영 건보공단 고문변호사는 “건보공단이 준비하는 소송 관련자들은 대법원이 인과관계를 인정한 4명과 같은 종류의 폐암·후두암을 앓고 있는 환자”라며 “이번 판결이 향후 소송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단 첫 관문인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일부 인정받았기 때문에 KT&G의 위법성을 입증하기만 하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또 건보공단이 이번 소송의 당사자였던 개인 피해자보다 담배회사에 관련된 정보를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자신감의 배경이다.
이번 소송에서 개인 피해자들을 대리한 배금자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마약회사이자 살인기업을 옹호하는 잘못된 판결”이라며 “이번 판결은 담배소송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의 담배소송은 이르면 14일 법원에 접수될 예정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