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네번째 철수한 安… 지방선거 어디로] 당심에 꺾인 ‘무공천’… 위기에 빠진 ‘새 정치’
입력 2014-04-11 03:12
“이것이 국민과 당원의 뜻이라면 따르겠다. 대표는 위임된 권한에 불과하다.”
10일 오전 9시20분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국회 당대표실로 들어갔다. 무공천 폐지로 결정된 당원투표·여론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충격을 받은 듯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다. 그 뒤로 약 6시간 반 동안 대표실에서 두문불출했다. 2011년 9월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이후 2012년 11월 대선후보직 사퇴, 지난 3월 독자 신당 창당 포기에 이어 또다시 ‘철수’해야 하는 현실이 힘든 모습이었다.
그동안 무공천을 매개로 표방해 온 새 정치를 어떻게 되살려야 할까. 독자 신당을 포기하고 민주당과 함께 새정치연합을 창당한 명분이었던 무공천 약속이 꺾이면서 새 정치의 명분은 이미 꺾였다. 새 정치의 실체 자체가 모호해졌다. 고민이 깊어지면서 오전에 하려던 기자회견은 미뤄졌고, 기자 회견문을 수없이 뜯어고쳤다.
뒤늦게 오후 4시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새정치연합마저 약속을 못 지켜 국민들께 사과드린다”고 먼저 고개를 숙였다. 이어 강한 어조로 “선거 승리를 위해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모두 흘리겠다”고 말했다. 기자회견문에 새 정치라는 말은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사실 안 대표는 여론조사를 거부할 수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창당의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또 공천 유지 쪽으로 유리하게 만들어진 여론조사 문항에 이의를 제기하고, 대표직을 거는 단호한 대국민 메시지로 무공천을 유도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퇴로의 변으로 “정치인 안철수의 신념이 당원 전체의 뜻과 같은 무게를 가질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토로했다. 안 대표 측근인 이태규 전 신당추진단 총괄지원단장은 “(안 대표가) 원칙을 접는 대신에 당 입장을 하나로 정할 수 있다”며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시각은 좀 더 냉정하다. 안 대표 스스로 무공천 논란을 정면 돌파하는 승부수를 띄우기보다 무공천에 따르는 위험을 분산하는 ‘헤징 정치’를 선택했다는 해석이다. 안 대표가 대다수 당원들의 뜻을 거스르고 무공천을 했다가 기초선거에서 질 경우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안철수의 새 정치에는 결단하고 돌파하는 모습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CEO 정치’의 반복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질서 있는 회군 시나리오를 짠 것 아니냐는 의심도 끊이지 않는다.
수도권 한 의원은 “지도자가 결단력 있게 뚫고 나갔으면 됐을 일”이라며 “무공천을 할 생각이었으면 여론조사를 하지 않았으면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자회견 말미에 “풀이 무성하고 밟히지 않아서 가야할 이유가 더 많은 그 길을 선택했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인용했다. ‘가지 않은 길’에서 새 정치의 길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