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는 중대 범죄이자 사회병리 현상”…울산·칠곡 이어 인천도 잇달아 발생
입력 2014-04-11 03:03
인천에서 어린 4남매가 부모의 방치 속에 쓰레기가 잔뜩 쌓인 집에서 7년간 생활해 온 사실이 알려졌다. 울산과 경북 칠곡에서 계모가 의붓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데 이은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아동 보호에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7일 인천 계양구 서운로의 한 원룸에서 부모로부터 방치된 채 살아오던 4남매가 경찰에 구조됐다. 이들이 살던 방은 온갖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차 있었다.
막내딸(7)은 이날 오후 11시30분 인천 중구 관내 한 아동보호시설에 언니(9)와 함께 맡겨질 당시 복수가 차 배가 불룩한 상태였다. 이들은 영양실조로 발육상태가 부진해 동급생보다 체격이 현저하게 왜소했다. 방 안에는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거실에는 인분이 묻어 있는 이불과 옷가지, 쓰레기 등이 쌓여 있었고 바퀴벌레가 수북했다. 첫째(17)와 둘째(13) 아들은 외부인들과의 접촉을 피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는 지난달 24일 미혼모가 22개월 된 아들이 칭얼댄다는 이유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전국 각지에서 아동학대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이런 사회병리현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피해아동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관련 인적·물적 인프라 확대와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홍창표 홍보협력팀장은 “피해 아동들을 부모로부터 격리하려 해도 보호할 시설과 전문 상담 인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아동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오는 9월 특례법(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돼도 크게 달라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장은 “우리나라는 사실 법과 제도는 어느 정도 갖춰져 있고 지난 1월 아동학대 특례법 제정으로 한 단계 더 개선됐다”며 “특례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아동보호 관련 전문기관과 상담 인력을 확충하는 등의 인프라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는 관여해선 안 될 ‘남의 집 일’이 아니라 반드시 신고해야 할 중대 범죄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명숙 변호사는 “아동학대는 법이 없어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아동학대는 심각한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부모들이 아이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여기거나 가혹한 체벌까지도 훈육의 방식으로 용인하는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신고 접수되는 아동학대의 80% 이상이 가정 내에서 친부모를 비롯한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동학대가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 잡지 않으면 관련 범죄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는 “‘사랑의 매’라는 레토릭이 깨지지 않는 한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체벌이 계속될 것”이라며 “체벌과 학대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장면을 목격했거나 학대가 의심되면 적극적으로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황인호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