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옷 입은 교양 프로그램… 신개념 하이브리드냐, 시청률 의식한 꼼수냐?

입력 2014-04-11 03:31


TV에서 방영되는 교양 프로그램은 그간 다큐멘터리나 생활 정보 프로그램의 형식을 띠었다. 시청자는 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양질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대중성보다는 교육적 의미가 강했고, 따라서 눈길을 사로잡을 흥미 요소는 떨어질지라도 존재의 이유는 분명했다. 그런데 요즘, 교양 프로그램은 ‘예능’의 옷을 입고 새로워지고 있다. ‘교양’이란 재료로 재미와 감동까지 잡겠다는 것인데 여기에 물음표가 따른다.

◇하이브리드일까 꼼수일까, 교양의 변신=‘제작진은 교양국 소속, 출연진은 예능인.’ 최근 신설된 교양 프로그램의 트렌드다. 가수 성시경, 개그맨 김구라, 개그우먼 김지민, 배우 방은희, 전직 아나운서 오상진과 유정현까지. 자타공인 입담꾼들을 모두 모은 곳은 바로 지난 1일 전파를 탄 KBS ‘대변인들’이다. 프로그램에선 ‘걸 그룹의 섹시 콘셉트’ ‘카페 사장의 푸념’ 등을 얘깃거리로 삼아 토론의 장을 벌였다. 이 프로그램은 ‘교양’으로 분류 돼 있다.

개그맨 박명수와 가수 호란이 진행을 맡은 SBS의 ‘백 투 마이 페이스’. 이달 중 방송을 앞둔 이 프로그램은 ‘성형 후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상처와 콤플렉스가 생긴 출연자들에게 이를 극복하고 원래의 아름다움을 다시 돌려주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SBS 관계자는 “치유의 목적을 가진 프로그램”이라며 “교양국에서 만들었지만 예능 스타일로 삶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황당한 이슈를 소개하는 타임 슬립(시간을 초월하는) 토크쇼를 표방하는 MBC 교양프로 ‘컬투의 어처구니’도 있다. MC 컬투(정찬우, 김태균)와 함께 방송인 최희, 그룹 DJ DOC의 김창렬, 정재용, 봉만대 감독, UFC 선수 김동현, 칼럼니스트 곽정은 등이 출연한다. 지난 10일 첫 방송에선 ‘폭탄주 제조법’ ‘인형녀의 화장법’ 등이 소개됐다. 패널들은 ‘충성주’ 등 색다른 폭탄주를 만드는 법을 시연하거나, 일본 만화 캐릭터인 세일러문으로 변신한 뒤 웃음을 선사했다. 위의 두 프로그램 모두 교양국에서 만들어지지만 교양의 흔적은 없다.

◇분류 기준 없어…노하우 부족하면 시청자들에게도 외면=방송법시행령 제50조에 따르면 오락에 관한 방송(예능과 드라마) 프로그램은 매월 전체 방송시간의 100분의 50이하로 편성돼야 한다. 여기에 교양은 ‘국민의 교양향상 및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방송프로그램과 어린이, 청소년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방송프로그램’이라 설명돼 있다. 하지만 보도와 오락, 교양 프로그램 등을 구분하는 잣대는 없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교양과 예능의 모습을 갖춘 프로그램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에 문제의식은 있다”며 “명확한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교양 프로 본연의 의미와 편성의 조화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관찰형’ 예능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교양과 예능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며 “무게감이 있어야 하는 내용들이 가볍게 다뤄지는 것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김교석 평론가는 “방송 중인 예능형 교양 프로그램의 경우 방향을 전혀 잡지 못하거나 재미와 의미의 가치가 잘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며 “노하우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