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정국 ‘자기 균열’ 경험한 지식인의 정체성 찾기… 쿠키뉴스 연재 김용희 장편소설 ‘해랑’
입력 2014-04-11 02:20
김용희(51·사진) 평택대 교수는 한국 문단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양손잡이다. 1992년 ‘문학과 사회’로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그가 2009년 ‘작가세계’ 가을호에 단편 ‘꽃을 던지다’를 발표하고 같은 해 장편소설 ‘란제리소녀시대’를 펴냈으나 그의 겸업은 처음엔 환영받지 못했다. 평론으로 쌓은 명성을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릴 것이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그는 창작을 병행했다. 그의 세 번째 장편소설 ‘해랑’(나남)은 그가 진정한 양손잡이 작가임을 증명하는 물증이다.
해방정국 당시 자기 균열을 경험한 지식인들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 등 일제강점기 문인들의 문학 세계를 논문으로 썼던 당시의 문제의식이 숙성돼 소설로 거듭난 것이다. 소설은 의식불명에 오랫동안 누워 있던 한 남자가 의식에서 깨어나는 데서 시작한다.
해방과 동시에 눈을 뜬 그는 자신을 극진하게 간호하는 여인 은실을 통해 자신이 은실과 결혼한 조선인 이해랑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나 해랑은 그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을 했던 사람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자신을 사람들은 전쟁광, 살인범, 마츠무라 준이치로라고 부르며 쫓아다니고 그는 은실의 책갈피에 끼어있던 오려진 신문기사를 떠올린다.
신문의 헤드라인은 ‘경무국장 마츠무라 데츠야 살인사건’이었고 그 하단에 작은 글씨로 ‘천재 피아니스트 마츠무라 준이치로. 부친살해 혐의로 수배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해랑은 과연 경무국장을 살해했단 말인가.
‘이중어 딜레마’를 기억 상실증에 걸린 해랑을 통해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이 소설은 해방 정국 당시 지식인들이 느꼈던 자기 동일성의 파괴 경험과 일치한다. 아울러 해랑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추적해가는 과정은 현대인들에게는 곧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탐색의 과정과도 닮아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역사소설의 범주를 뛰어넘어 ‘지금 여기’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국민일보 온라인 매체인 쿠키뉴스에 연재돼 매회 조회 수 9000건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이다. 김용희는 “한국 문단을 지배하는 지나친 엄숙주의에서 이제는 벗어나 한국 문학도 여러 가지 소설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승인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하면서 “인터넷에 연재한 것도 엄숙주의를 깨기 위한 실험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