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공정위, 규제완화 바람에 속앓이
입력 2014-04-11 02:49
블로그 등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진품을 가장한 짝퉁 상품을 구매하는 등 피해를 당하는 소비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런 유형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해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끝나고 혐의가 확정될 때까지 사기 사이트의 영업정지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법원의 판결 전 가처분 효력과 같은 임시중지명령제도가 표시광고법에는 있지만 전자상거래법에는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 제도를 전자상거래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선뜻 확정을 짓지 못하고 있다. 자칫 규제완화 바람에 역행하는 것으로 비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또 새로운 규제를 하나 도입하려면 기존 규제 하나를 폐지해야 하는 ‘원인 원아웃(One-in One-out)’ 규정도 부담스럽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 퇴색에 움츠러들었던 공정위가 이번에는 규제완화 바람에 위축되고 있다. 임시중지명령제도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규제기관인 공정위는 다른 부처와 달리 시장질서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규범적 규제가 많다. 하지만 공정위는 국무조정실로부터 다른 경제부처와 같이 연내 전체 규제의 12%를 폐지하라는 방침을 통보받았다. 당장 18일까지 국무조정실에 규제개혁 시행방안을 보고해야 한다.
공정위는 규제감축 목표 할당치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정위 소관 등록규제 482개 중 규범적 성격이 강한 120개 규제는 12% 감축률 적용을 위한 분모에서 뺀다는 것이다. 규범은 특정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조정·통제수단인 규제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공정거래분야 규제는 경제활동에서 꼭 지켜야 할 준칙이므로 필요한 규제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등록규제 482개에 12%룰을 적용하면 올해 감축목표는 58개가 되지만, 규범에 해당하는 규정 120개를 빼고 산정하면 감축목표가 43개로 줄게 된다. 대신 공정위는 규제로 공식 등록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강제성을 지니는 모범거래기준, 가이드라인 등 미등록 규제도 정비한다는 방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난번 관련 회의에서 국무조정실에 ‘담합 규제를 신설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없애야 하느냐’면서 공정위에 원인 원아웃 규정을 적용하는 것의 문제점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 바람대로 공정위의 특수성이 인정될지는 미지수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협의를 해봐야겠지만 연내 전체 경제규제의 10%, 임기 내 최소 20%를 폐지한다는 기존 목표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