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파수견은 영원하라
입력 2014-04-11 02:28
“불합리한 법과 관행이 개선되고 비위 공직자가 처벌되도록 끝까지 감시해야”
언론의 역할을 개(犬)에 비유하는 용어들이 있다. 안내견(guide dog) 애완견(lap dog) 파수견(watch dog)이 대표적이다. 일반인에게는 낯설지 모르지만 신문·방송을 전공하는 학생과 언론인에게는 익숙한 단어들이다.
안내견은 주로 저개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언론의 역할을 평가한 개념이다. 애완견은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했던 언론을 비판하는 말이다. 군사독재의 잔재가 사라진 뒤에도 정권 홍보에 앞장서는 언론을 애완견이라고 비하한다. 우경화의 길로 매진하는 아베 신조 정권을 두둔하는 일부 일본 언론도 애완견 범주에 들어간다.
감시견이라고도 하는 파수견은 이상적인 언론상(言論像)이다. 18세기 영국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가 제4계급으로서의 언론 위상을 설파한 이래 행정·입법·사법부를 감시하는 제4부로서의 언론 역할을 강조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어다. 언론이 정도를 걸어야 함은 물론이다. 많은 언론인이 배부른 애완견보다 배고픈 파수견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서슬이 퍼런 군사정권 때에는 파수견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펜을 빼앗기고 일터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하고, 정보기관에 불려가 고문당할 위험까지 무릅써야 했다. 계엄군이 전국을 장악한 1980년에는 검열로 인해 비판 기사가 삭제된 상태로 신문이 발행되기도 했다.
권력과 재벌, 기득권층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파수견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언론의 공익적 기능을 다하기 위해 감시와 비판의 대상을 소위 공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은 정당하다. 다만 언론의 비판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은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최근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 노역’ 사건과 청와대 행정관들의 비위를 질타한 언론의 보도는 파수견 역할에 충실한 사례로 꼽을 만하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모든 언론이 두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면 허 전 회장은 벌금을 내지 않고 황제 노역을 계속했을 것이고, 행정관들은 부처에서 ‘당당’하게 활보했을 것이다.
허 전 회장 사건은 아무리 복기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1심에서 검찰이 구형과 함께 벌금형 선고유예를 요청하고, 향판(鄕判·지역법관)은 항소심에서 벌금을 254억원으로 줄이고 노역 일당을 5억원으로 올렸다. 한마디로 50일가량만 노역하면 벌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다. 검사는 상고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 향검(鄕檢·지역검사)과 향판이 개입했다.
허 전 회장은 항소심 판결 직후 해외로 나갔다. 외국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카지노에서 도박하는 장면까지 보도되면서 여론은 들끓었다. ‘황제 노역’ 판결을 내린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이 사표를 냈고, 검찰은 허 전 회장의 노역을 중단시키고 재산 추적에 들어갔다. 대법원은 향판제 폐지를 검토하고, 벌금을 노역으로 대체하는 환형유치(換刑留置)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청와대 3∼5급 행정관 5명이 재벌들로부터 현금 상품권 골프접대 등을 받고도 징계를 받지 않은 것은 국민을 우롱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국세청 등 힘 있는 부처에서 청와대로 파견된 공무원들인데, 비리 내용이 가벼워 유야무야했다는 것이다. 소속 부처로 돌려보내는 것 자체가 징벌 조치라고 우기는데 어이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서실의 원칙 없는 대응을 지적하고 공직기강을 바로잡으라고 질타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언론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검찰이 허 전 회장의 은닉재산을 모두 찾아내는지, 향판제와 환형유치제가 현실에 맞게 개선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노역장에 유치하는 기간을 현행 3년 이하에서 대폭 확대하고, 노역 일당을 벌금 최소액(5만원)보다 많이 늘리지 못하도록 형법이 개정되게 해야 한다. 비위를 저지른 행정관들이 어떤 불이익을 받는지 국민에게 알릴 의무도 있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