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힐링 허그
입력 2014-04-11 02:42
“만약 내가 한국인들에게 단 하나만을 가르쳐야 한다면 바로 허그를 가르칠 거예요.” 움직임을 통해 몸과 마음의 전인적 변화를 추구하는 소매틱 분야의 권위자인 호프만 소토 교수가 웃으며 해준 이야기다. 한국 학생들은 춤과 동작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엄청 열정적인데 허그로 인사를 할라치면 이상하게 어제 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어색해 하거나 굳어진다는 것이다.
나만 해도 몇 년 전 해외로 도보여행을 가기 전까지 안는다는 것은, 남녀 사이에나 이루어지는 좀 찐한 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40여일간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걷고 생활하는 동안 허그의 치유력을 맛보게 되었다. 스페인의 허허벌판 길 위에서 함께 걷는 이들이 반가움에 꼬옥 안아줄 땐, 배낭 무게도, 부르튼 발의 통증도, 차가운 외로움도 잊을 수 있었다. 키가 큰 독일 여자 앙카의 든든한 허그, 친할아버지 같던 피터의 따뜻한 허그…. 남녀가 유별한 한국의 딸인 나였지만 존재와 존재가 서로를 환영하고 지지하는 그 전적인 포옹의 순간엔 남녀도 노소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깨닫고도 다시 인천공항에 들어선 뒤 나는 도로 뻣뻣쟁이가 되어버렸다. 회사 동료들과 한 워크숍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시작과 끝 부분에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어야 했다. 평소에 농담도 잘하고 우리 팀이야 하고 몰려다녔지만 후배랑 허그를 하려니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주변을 보니 다들 나처럼 어정쩡하게 어깨를 감싼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 간단한 동작에서도 일상 속에서 우리가 숨기고 있는 서로에 대한 마음의 거리가 여실히 드러나는 듯했다. 비단 이해관계가 얽힌 직장에서 만나는 동료라 그런 것도 아니다. 집에서, 혹은 친구들과 온 마음으로 포옹해 본 적이 언제인가.
얼마 전 주말에 ‘힐링 허그 사감포옹’ 행사에 참석했다. 광화문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꼬옥 안아주는 행사였는데 사감포옹을 마치고 난 얼굴들이 벚꽃처럼 환히 빛났다. 등산을 다녀오다 우연히 참석하게 된 아주머니는 살짝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진심어린 포옹이 치유의 시작이라고 말한 고도원님의 이야기가 오래 맴돌았다.
고개를 홱 돌린 채 뻣뻣이 어깨를 감싼다면, 오히려 상대에게 불편을 안겨줄 것이다. ‘안음’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몸과 마음, 영혼도 온전히 열어두겠다는 마음의 신호이자 기꺼운 몸짓이어야 한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