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임순 (12·끝) 하나님이 맡기신 아이들과 60년 “감사했습니다”

입력 2014-04-11 03:48


전쟁고아들과 처음 만난 이후로 60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줄곧 아이들만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는데, 이곳을 거쳐 간 아이들 중에 짝을 만나 결혼한 아이들이 생겨나고, 직업교육을 받은 아이들 중에 장애를 딛고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아이들도 제법 많아졌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애광원의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가장 큰 원칙은 예배다. 애광원 직원 중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종교를 이유로 채용에 차별을 두지는 않는다. 하지만 직원들은 우리 시설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세워졌고, 운영된다는 사실을 채용 전부터 알고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매일 아침 직원예배로 하루를 시작한다. 예배에서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배려한다. 나는 지금도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일부러 눈으로 보며 읽는다. 그래야 외우지 못했거나 외울 생각이 없는 직원들이 부담이 없다. 직원예배에서는 하나님 앞에 ‘오늘도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깨끗한 애광원이 되겠습니다’라고 서원한다. 꼭 전도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지만, 직원예배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개인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함께 찬송을 부르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때로 큰 위로가 되는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광원에서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우리들을 위해서도 찬송과 기도가 떨어지면 안 된다.

시설 밖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출석하는 교회나 차량과 인솔자를 보내주는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다. 주일에는 아이들 옷차림과 행동에 더 신경을 쓴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게 할 수는 없으니까. 옷을 잘 차려입고 교회에 가서 바른 태도로 예배를 드리면 장애아동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못 알아보는 교인들도 꽤 많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지적장애아동을 기르고 가르쳐 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적장애인 시설은 인력이 너무나 부족하다. 현재는 장애인 6명당 1명의 보모나 사회복지사를 지원받는다. 선진국에서는 2∼3명당 1명의 인력이 지원된다고 들었다. 지적장애아동은 교사가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한시도 눈을 돌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공무원들이 하루만 와서 같이 살아본다면 우리의 현실을 알 수 있을 텐데, 대개의 정책이 그저 책상에서만 결정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소한 장애인 3명당 1명의 인력이 지원된다면 평생 장애의 그늘 속에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이 조금은 더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족한 정부 보조금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후원금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이다. 보조금으로는 애광원 운영비의 70%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하다. 그래서 후원금으로 버틸 수밖에 없는데, 우리 같은 기관은 후원금의 일부만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후원자나 후원기업들이 100%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지는 기관에 더 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것은 우리 같은 시설 원장들의 가장 큰 요구이자 절박한 현실이다.

장애인 지원시설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는 ‘우체통 오뚝이’가 되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칭찬의 목소리도 있고, 비난의 목소리도 있겠지만 모든 소리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우체통처럼 살라는 얘기다. 그리고 누가 때려도 반드시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물론 스스로 깨끗해야 함은 설명할 필요 없는 전제다. 그래야만 우리의 도움이 꼭 필요한 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장승포 언덕에서 처음 고아들을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하나님 은혜 없이 지나올 수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도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

정리=최승욱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