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라이벌 있었기에 더 풍성했던 한국 화단
입력 2014-04-11 02:11
한국미술사의 라이벌/이태호/세창출판사
어떤 분야든 라이벌은 있다.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하기 때문에 선의의 라이벌은 필요하다.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인 저자는 한국문화사의 격동기인 18∼20세기의 회화동향을 작가 8명의 라이벌 관계를 통해 추려냈다.
겸재 정선(1676∼1759)과 단원 김홍도(1745∼1806), 추사 김정희(1786∼1856)와 다산 정약용(1762∼1836), 청전 이상범(1897∼1972)과 소정 변관식(1899∼1976), 대향 이중섭(1916∼1956)과 미석 박수근(1914∼1965) 등 당대에 쌍벽을 이룬 네 쌍에 대한 이야기를 각자의 성격과 대표작, 시대상황 등을 비교해가며 강의형식으로 들려준다.
제1강은 조선후기 작가인 겸재와 단원이다. 두 사람은 각각 영조와 정조 시절 문예부흥기의 중심에 섰던 화가들이다. 겸재는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등 우리 땅을 그린 진경산수화로, 단원은 ‘윷놀이’ ‘쟁기질’ 등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단원은 ‘총석정’ ‘사인암’ 등 진경산수에도 실력을 발휘했다. 겸재가 대상을 과장해 마음에 기억된 조선 땅을 그렸다면, 단원은 실경사생을 통해 실제처럼 그렸다. 각각 이상과 현실 속 산수 그림으로 진경화법을 이룩한 것이다.
제2강은 다산과 추사다. 다산은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이고, 추사는 ‘세한도’와 ‘추사체’로 유명한 서화가이다. 다산은 시문학과 더불어 서화도 많이 남겼다. 경기도 남양주의 다산고택에 걸린 현판 ‘여유당(與猶堂)’에서 보듯 그는 외유내강의 성품을 지녔다. 반면 제주로 유배 가는 길에 전남 해남의 ‘녹우당(綠雨堂)’에 들러 남긴 ‘노학암(老學菴)’ 현판에서 보듯 추사는 내유외강의 성격이었다. 다산은 사실(寫實)을, 추사는 사의(寫意)를 바탕으로 대립하면서도 각자의 예술론을 펼쳤다.
제3강은 청전과 소정이다. 전통 수묵화 분야에서 근대형식을 재창조한 청전은 ‘평담(平淡·마음이 고요하고 깨끗함)’으로, ‘추경산수’ 등 전통 산수화뿐 아니라 ‘영도교’ 등 수묵으로 그린 근대 풍경화도 다수 남긴 소정은 ‘분방(奔放·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움)’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청전이 감성적이라면, 소정은 지성적이었다. 근대수묵화의 쌍벽을 이루는 두 사람은 그림 재료부터 제목인 화제(畵題)를 쓰고 낙관을 찍는 것까지 전통을 유지했다.
제4강은 이중섭과 박수근이다. ‘국민화가’로 평가받는 두 작가는 어려운 시대의 삶을 독특한 필치로 담아냈다. 격정적인 이중섭이 가장 아팠을 시기인 1950년대 중반에 그린 ‘황소’와 과묵한 박수근이 6·25전쟁 후 그린 ‘아기 업은 소녀’는 두 작가의 인생과 예술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여덟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완벽하고 세련된 정제미보다는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간결함’에 있다. 저자가 30년간 답사하며 촬영한 작가의 고향, 작업실, 묘소 등을 작품 이미지와 함께 실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