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애플’을 빛낸 천재, 두 명 더 있다

입력 2014-04-11 02:15


조너선 아이브/리앤더 카니/민음사

미친 듯이 심플/켄 시걸/문학동네


스티브 잡스는 2011년 세상을 떠나기 전 회사의 한 직원을 이렇게 평가했다. “나를 제외하고 회사의 운영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거나 상관 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잡스가 지목한 인물은 현재 애플사의 디자인 총괄 수석 부사장인 조너선 아이브이다. 그는 잡스와 함께 애플 디자인의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이지만 개인 삶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아이브는 애플을 빛낸 천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스테이크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영국 청퍼드 자치구에서 1967년 은세공 전문가이자 디자인 교수인 아버지 마이크 아이브와 심리치료사인 어머니 패멀라 메리 아이브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소년 시절에 사물의 작동 원리에 호기심을 보였다.

“어린 시절 손에 닿는 물건은 무엇이든 분해하곤 했는데 이런 호기심이 나중에는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형태는 어떠하고 재료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했습니다.”(16쪽)

아버지는 틈만 나면 아이브를 불러 다자인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이런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그는 16세에 이미 다양한 칫솔을 스케치한 작품으로 디자인 전문가들의 눈에 띄게 된다. 그리고 산업 디자인 부문에서 영국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뉴캐슬 과학기술대학(현 노섬브리아 대학)에 입학, 독일의 바우하우스식 교육보다 더 형식파괴적이고 혁신적인 수업을 받는다. 대학 재학 중 왕립예술학회(RSA)가 주최하는 경연대회에서 그에게 수상의 영예를 안겨 준 작품은 미래형 전화기였다. 몸체에 송화기가 내장되어 있고 물음표 갈고리의 직선 부분은 손잡이, 굴곡진 부분은 수화기로 된 디자인이었다.

이 미래형 전화는 성룡 영화의 무대 디자이너들이 소품으로 쓰게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파격적이었지만 그는 요청을 거부한다. 대학 졸업 후 런던 최고의 디자인 회사 로버츠 위버 그룹(RWG)에 입사한 그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제품들을 디자인했고 마침내 1992년 9월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애플의 정식 사원으로 입사하면서 거주지를 미국 캘리포니아 트윈픽스로 옮기게 된다.

1997년 7월, 애플 이사회에서 잡스가 회사의 리더로 발탁되었을 때 아이브는 뒷좌석에서 그의 수락연설을 듣는다. “우리의 목적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는 스티브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그런 철학에 기초해서 내리는 결정은 그 이전까지 애플에서 내리던 결정과 근본적으로 다를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147쪽)

잡스가 혁신적인 제품 창조의 역사를 써갈 때 그 곁엔 아이브가 있었다. 생전의 잡스는 그를 두고 ‘영혼의 파트너’라고 말할 만큼 절대적으로 신임했다. 그의 천재성은 이렇게 요약된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한 제품입니다. 여타의 다른 방식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단순한 제품 말입니다. 제대로 된 디자인이라면 사용자를 더 가까이 끌어 당겨 제품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지요. 예컨대 뉴 아이패드를 위해 우리가 제작한 아이포토 앱은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게 만들거든요.”

아이브의 생각은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을 디자인 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그의 아이디어는 잡스의 생각과 맞아떨어졌고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의 전설적인 제품 시리즈에 고스란히 담겼다.

오늘날 애플의 이미지를 빚어낸 이는 또 있다. 1997년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는 애플의 대표 브랜드 문구 등 수많은 걸작을 선보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켄 시걸이다. 시걸은 저서 ‘미친 듯이 심플’에서 잡스의 경영방식을 ‘단순함을 향한 헌신적인 집착’이라고 표현하면서 혁신을 가능하게 한 단순함의 11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시걸이 포착한 잡스 경영의 제1원칙은 ‘냉혹하게 생각하라(Think Brutal)’이다. 여기서 말하는 ‘냉혹함’은 조직이 최고의 결과를 내도록 과정과 평가에서 할 말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는 잡스의 냉혹함 때문에 애플과 협력사의 관계가 나빴을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을 부인한다. 그는 “오히려 서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솔직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금방 해결되었고 이해관계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이맥(iMac)의 작명을 둘러싼 일화도 흥미롭다. 1998년 잡스는 최신 컴퓨터를 출시하면서 ‘맥맨(MacMan)’이라는 이름을 원했다. 하지만 시걸은 이 이름이 소니의 ‘워크맨’을 연상시켜 첨단 컴퓨터 이미지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게임 이름 ‘팩맨’과 비슷해 우스꽝스럽다며 집요하게 잡스를 설득한 끝에 ‘아이맥’이라는 이름을 지켜냈다. 시걸이 털어놓은 잡스의 11가지 경영원칙은 ‘작게 생각하라(Think Small)’, ‘최소로 생각하라(Think Minimal)’, ‘가동성을 생각하라(Think Motion)’ 등인데 이는 애플이 미니멀리즘으로 승부를 걸었음을 새삼 환기시켜준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