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계모 사건 파장] “보호기관·학교·경찰 협조체계 먹통… 시스템부터 살려라”

입력 2014-04-10 03:32

전문가들이 말하는 문제점·대책은

경북 칠곡에서 계모의 학대로 의붓딸 A양(당시 8세)이 사망하기까지 여러 차례 경고음이 울렸다. 그러나 관련 기관들의 대응 시스템은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아동학대 신고와 조사,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아동학대 범죄 및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 특례법)이 지난해 말 제정됐지만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9일 “‘칠곡 사건’은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학교, 경찰 등 관련 기관들 간 협조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A양의 담임교사가 지난해 2월 아동학대 가능성이 있다고 신고했지만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적극적인 조사에 나서 상황을 파악해야 했지만 A양이 숨지기 이틀 전 가정방문을 시도하고도 계모 임모(35)씨가 외출을 이유로 거절하자 조사를 포기했다. 담임교사는 A양이 상습적인 학대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았지만 이런 사실이 아동보호기관에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경찰도 사건 대처에 문제점을 드러냈다. A양의 언니 B양(12)이 2012년 10월 경북 구미의 한 파출소에 직접 학대 사실을 신고했지만 계모와 친아버지가 발뺌하자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아동학대 신고가 여러 경로로 접수됐지만 관련 기관끼리 정보 공유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학대 사실이 묻히고 만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8월 A양이 숨진 후엔 두 달간 B양과 부모를 격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해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

미국에서는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과 사회복지사가 함께 현장 조사에 착수하고 학대 혐의가 포착되면 즉시 아동을 격리해 보호한 후 조사를 벌인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대아동 보호를 위한 예산과 인력 등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아동학대 특례법이 시행되면 법적인 미비점은 상당부분 보완되겠지만 예산이 뒷받침돼야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며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전문 상담인력을 대폭 보강하고 수사과정에서도 아동대상 범죄에 익숙한 전문가들이 투입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는 9월 시행되는 아동학대 특례법은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신고와 처벌을 강화하고 아동학대 신고 접수 시 경찰과 아동보호 전문기관 직원이 즉시 출동해 피해 아동을 보호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특례법 시행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책정한 올해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등 정부의 예산 지원이 부족해 당장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