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목사에게 희망의 날개를] (중) 은퇴 목사의 그늘

입력 2014-04-09 18:16 수정 2014-04-10 03:31


은퇴자 40% ‘연금’ 없어 힘겨운 노후

올해 여든의 이모 목사는 한달에 열흘 남짓 건물 청소를 한다. 벌써 수년째다. 독신인 그는 10여 년 전 목회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정기적인 수입이 끊기자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다. 은퇴 목사 모임에서 점심을 먹는 날이면 남은 음식을 봉지에 담아가 저녁 끼니로 때우기도 한다.

비슷한 나이의 정모(여) 목사가 E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는 데도 사연이 있다. 10년 전쯤 은퇴하고 남편과도 사별한 그는 간호 조무사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불러주는 곳이 없자 딱한 사정을 접한 E교회 목사의 배려로 매주 예배 반주를 하면서 사례비조로 월 5만원씩 받고 있다. 정 목사는 “자식들이 있지만 경제적으로 그리 큰 힘은 되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 이면에는 은퇴 목사들의 피땀이 배어 있다. 하지만 그들의 노후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의 전국은퇴목사회 회장 정은성 목사는 “지금 생존해 있는 은퇴 목사들은 오로지 목회를 삶의 전부로 여기며 살아온 분들”이라며 “정작 자신들의 노후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예장통합의 전국은퇴목사회 통계(2012년 기준)에 따르면 소속 교단의 은퇴 목사 1500여명 가운데 목회자 연금 미가입자는 600명 정도로 4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지원을 받고 있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200명 안팎으로 약 13.3%에 달한다. 시무교회로부터 주택과 생활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원로 목사’는 70명 정도로 4.7%에 불과했다.

노후 대비를 못한 채 은퇴한 목사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자녀 도움을 받지 못하면 직접 생계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은퇴한 지 10년쯤 되는 김신일(가명·79) 목사. 지난 30여년의 목회인생에 비해 은퇴 후의 생활은 고달프다. 그는 “원로목사가 되지 않는 한 후임 목회자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교회부터 옮겨야 하는 상황부터 막막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목회자 연금에 가입 하지 않았다. 시무했던 교회 규모(장년 성도 70여명)도 크지 않아 퇴직금도 변변히 받지 못했다. 자녀들에게 손을 벌리기도 미안해서 시작한 게 아파트 경비원.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아 곧 그만뒀다. 최근 뇌졸중 증세를 보여 일을 할 수도 없다. 생활비를 최대한 줄여 살며 종종 찾아오는 손주들과 놀아주는 일이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최근 수년 사이 교계에는 은퇴 목사들을 위한 모임이나 프로그램 등이 부쩍 늘고 있다.

은퇴 목사들을 위한 예배공동체나 교단·지역별 모임, 위로행사 등이 대표적이다. 고령화 사회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교계에도 반영되는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하지만 이같은 활동에도 동참하지 못하는 ‘절대 사각지대’의 은퇴 목사들도 여전하다. 서울 오륜교회의 은퇴목사 예배공동체인 오륜목자교회 박천일 목사는 “양산되는 은퇴 목사에 대한 교계 전반의 적극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찬 이사야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