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오종석] ‘안철수 바보 만들기’ 의 역설
입력 2014-04-10 02:41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바보가 된 듯하다. 6·4지방선거를 50여일 앞두고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에 대해 “당원과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고 밝힌 뒤 그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철수’ ‘후퇴’ ‘회군’은 그의 닉네임이 됐다. 약속을 어긴 대표적 정치인이 돼버렸다. 소신 없고 무능한 정치인으로까지 매도되고 있다.
무공천을 매개로 민주당과 합당해놓고 이제 와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니 그럴 만도 하다. “정치가 선거 승리만을 위한 거짓 약속 위에 세워진다면 앞으로 국민과의 어떤 약속도 불가능하다”(통합발표문) “잠시 죽더라도 영원히 사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창당대회 공동대표 수락연설). 그는 그동안 줄곧 ‘무공천=새 정치’를 대의명분으로 외치며 약속을 어긴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지 않았던가. 친노(친노무현)계를 중심으로 공천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당내 비당권파도 거세게 비판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진퇴양난에 빠진 철수
안 대표는 진퇴양난에 빠진 모습이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와 여당은 물론 새정치연합 내에서도 친노계를 중심으로 기득권 세력들은 그를 계속 바보로 몰고 있다. 박 대통령은 무공천 문제를 협의하자는 안 대표의 제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보내는 최소한의 형식을 통해 “나는 당신의 카운터파트가 아니다”는 입장만 분명히 확인시켰다. 안 대표의 지난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당시 “너나 잘해”라고 말했던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9일 “늦었지만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비아냥댔다. 새정치연합 비당권파 의원들은 안 대표의 무공천 소신이 잘못됐음을 확신시키며 그의 힘을 빼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10일 ‘국민 여론조사와 당원 투표’를 통한 무공천 관련 여론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안 대표 측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안 대표를 계속 바보로 몰아갈 태세다.
철수만 바보인가
하지만 바보는 안 대표만 되는 것일까. 청와대와 여당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파문,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등 사사건건 정파적 갈등으로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었다. 기초연금 관련 법안 등 제대로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국민의 피로감은 갈수록 쌓여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합리적 온건파로 불리는 안 대표를 무시하지 않고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안 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생정치를 위한 협력을 약속했다.
새정치연합은 벌써부터 ‘도로 민주당’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안 대표는 결국 이용만 당하고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안 대표가 ‘팽’ 당하고 ‘안철수 현상’의 시너지 효과가 식어 가면 향후 선거는 물론 당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모두 무공천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무공천의 옳고 그름은 제쳐두자. 어쨌든 지금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보다 약속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한발 물러선 사람이 더 손가락질을 당하는 모양새다. 정치권에 여러 가지 셈법과 정치 공학적 상황논리만 존재한다면 정치혁신이나 진정한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은 뭐가 되나.
국민이 바보일까. ‘바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이 결코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켰다. 청와대 관계자, 여야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면 “안철수가 정치를 모른다. 바보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지금 그를 손가락질하며 웃는 사람들이 진짜 바보가 될 수도 있다.
오종석 정치부장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