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열] 환경규제, 최소화하되 합리적으로

입력 2014-04-10 02:48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는 말이 있다. 할머니가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아이가 “달이 뭐냐?”고 물었다.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게 달이란다”고 했더니, 그 후로 이 아이는 손가락을 달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다. 본질을 외면한 채 비본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뜻하는 말인데, 이 경구를 떠올리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1991년 2월 제정·시행됐다. 환경부는 이 법률 시행 이후에 유통되는 화학제품에 유해성 심사를 거쳐야 하는 신규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화학제품을 수입하는 업체들에게 통관에 앞서 제품의 성분내역서를 제출해 규제 준수 여부를 확인받도록 요구했다. 이런 사전확인 제도는 법률을 준수하는 선의의 피규제자들에게는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게 한다. 또 영업비밀을 노출하도록 하는 반면 허위서류 제출도 서슴지 않는 악의의 피규제자들에 대해 아무 제재도 가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환경부도 사후관리를 통한 법률의 집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돼 신규 화학물질이 유해성 심사를 거치지 않고 유통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규제자인 환경부가 일찍부터 적합한 환경규제를 채택하고 사후관리를 충실히 했더라면, 그리고 피규제자인 화학제품 제조·수입업체들이 선제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최근 몇 년 동안 환경 이슈로 떠오른 많은 화학물질 관련 사건·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례는 또 있다. 96년 1월 ‘토양환경보전법’이 제정·시행되면서 환경부는 일정 용량 이상의 석유류와 유독물 제조시설 및 저장시설에 대해 정기적인 토양오염검사를 받도록 했다. 이 역시 검사비용 및 가용기술 등의 제약으로 실제 오염 부지를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아 검사 자체가 유명무실한 규제로 전락했다. 피규제자들도 비용적으로 저렴한 토양오염검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토양오염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검사기관을 회유하거나 협박해 토양오염이 되지 않았다는 검사보고서를 받기에 급급했다.

이처럼 실효성이 없는 환경규제로 인해 발생하고 확대된 토양오염이 추후에 기업 인수·합병(M&A)의 걸림돌이 되거나 정화책임 관련 분쟁으로 비화한 사례를 필자는 수없이 경험했다.

헌법 제35조, 환경정책기본법 제1조 및 제2조에 나와 있듯이 현재와 미래의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환경규제가 필요하다. 아이가 달을 찾으려면 할머니의 손가락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다만 할머니의 손가락 방향이 정확히 달을 가리키지 못하면 본질이 왜곡돼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환경규제도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을 침해하지 않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이어야 한다. 또 평등의 원칙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획일성을 탈피하고 구체적인 타당성을 가져야 한다. 지역 구분에 따른 획일적 입지규제를 유지하는 경우에도 국민의 건강 및 환경보전에 대한 위험을 방지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엄격한 조건을 충족하는 시설의 입지를 예외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입지규제의 합헌성과 실효성을 제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환경규제를 최소화하면서도 환경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후관리를 통한 환경규제의 집행을 강화해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환경규제를 준수하지 않으면 반드시 행정처분 또는 형사처벌 등의 제재가 가해진다는 보편적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아울러 환경오염의 피해자들이 피해구제를 받기 위한 사법상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환경책임법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규제자가 스스로 환경규제를 엄격히 준수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유인할 필요가 있다.

박상열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