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與, 野에 ‘말 바꾸기’ 정당이라 비난할 자격 있나
입력 2014-04-10 02:21
선거는 제로섬게임이다. 내가 당선되려면 남을 떨어뜨리는 방법 외에 다른 수단이 없다.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 되는 게 선거다. 그래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여부를 둘러싼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은 새누리당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임에 틀림없다. 당원투표와 여론조사로 기초선거 공천 당론을 정하기로 한 새정치연합에 대해 새누리당 지도부가 연일 ‘말 바꾸기 정당’ ‘약속 뒤집기 정당’이라고 공세의 고삐를 죄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유일호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만약 기존 입장을 바꾸려 한다면 국민께 사과하고,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새누리당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문종 사무총장은 “기초선거 공천을 유지하게 될 경우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 뜻, 당원의 뜻 운운하겠지만 그럼에도 말 바꾸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당직자가 한 말만 아니라면 구구절절 옳은 지적이다.
다른 당은 몰라도 새누리당은 그런 말할 자격이 없다. 먼저 말을 바꾸고, 약속을 뒤집은 정당이 바로 새누리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정치연합에 ‘말 바꾸기 정당’ ‘약속 뒤집기 정당’이라는 굴레를 씌우려는 건 시치미 뚝 떼고 제 얼굴에 침 뱉기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들보는 덮어둔 채 남의 티끌만 문제 삼으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 파기와 관련해 새누리당이 한 유감 표명이라곤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 상향식 공천을 가장 깨끗하게 관리해 아름다운 공천으로 보답하겠다”는 최경환 원내내표의 언급이 전부다. 유 정책위의장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대통령과 당 대표도 사과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공약한 당사자는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유감 표시는커녕 어떠한 입장 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평소 누구보다 신뢰와 책임정치를 강조해온 박 대통령 스타일과 거리가 멀다. 사실상 선거전이 시작된 마당에 정치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청와대 해명만으론 부족하다.
새누리당은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개중에는 나중에 예산 문제 등 부득이한 이유로 지키지 못할 공약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것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하지만 기초선거 공천 폐지처럼 의지만 있으면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약속마저 무시로 파기한다면 새누리당의 공약을 신뢰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공약은 국민과 한 약속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 사과하고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충분한 이해를 구하는 게 순서다. 그리고 나서 표를 달라고 하는 게 국정을 책임진 여당의 올바른 처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