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무원연금 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입력 2014-04-10 02:31

셀프개혁 한계 넘으려면 시민단체 목소리 적극 수용해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공무원연금 적자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의 개혁 역량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됐다. 공무원연금을 그대로 두면 국가재정에 재앙이 닥치는 것이 불 보듯 한데도 역대 정부는 이를 방치하거나 개혁이랍시고 미봉책으로 일관해 왔다. 이런 도적적 해이를 방치한 채 정부가 적자 투성이의 공공기관을 개혁하겠다거나 국민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외쳐봐야 당사자들은 공무원연금을 가리키며 이를 빌미로 변화에 저항할 것이 뻔하다.

우리나라의 공무원·군인연금은 ‘덜 내고 더 받는’ 구조가 특히 두드러진다. 현재 공무원은 낸 돈의 2.5배, 일반 국민은 낸 돈의 1.7배를 연금으로 돌려받는다. 연금 지급 개시 연령도 일반 국민은 65세(1969년 이후 출생자), 공무원은 60세(1996년 이전 공직 시작)로 5년이나 차이가 난다. 이에 따라 공무원연금은 2001년 599억원 적자를 시작으로 해마다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공무원연금에 7조4000억원이 들어왔고 9조4000억원이 지출되면서 정부가 모자란 돈 2조원을 전액 세금으로 보전했다. 적자 보전을 위한 국민 부담은 이명박정부 7조6930억원, 박근혜정부 14조9934억원, 다음 정부 31조4742억원으로 5년마다 2배씩 늘어나게 된다.

게다가 이런 공무원연금 적자가 기존 추산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가 8일 나왔다. ‘2013 회계연도 국가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가 전체 부채 1117조3000억원 중 53.4%인 596조3000억원이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인 것으로 나타났다. 충당부채는 앞으로 국가가 지급해야 할 연금액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것이다. 지난해 지급된 공무원연금 가운데 약 20%가 세금으로 보전됐음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로는 약 113조원, 국민 1인당 224만원의 혈세가 공무원 노후 보장에 투입되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초 3개 공적연금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명시했다. 그렇지만 올해가 아니라 내년에 재정 재계산을 실시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2016년에 법 개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의 저항이 심한 연금 개혁을 집권 3년차 이후로 늦춘다는 결정은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공적연금의 문제점에 관해 수많은 연구 결과와 개혁 방향이 이미 다 나와 있는데 재정 재계산을 다시, 그것도 내년에 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공적연금 개혁을 서두르지 않을 이유는 없다. 다만 힘이 센 기득권층일수록 정당한 요구에도 저항한다. 역대 정부의 공적연금 개혁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셀프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 공무원연금발전위원회는 공무원과 공무원노조, 대학교수 등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이 주도했다. 특히 대학교수는 중립적 전문가인 것처럼 보이지만 국립대 교수는 공무원연금, 사립대 교수는 사학연금 가입자다. 개혁 과정에서 공무원과 교수의 참여 비중을 대거 낮추고, 납세자와 국민연금 가입자를 대표할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더 크게 반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