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癌은 병원의 젖줄인가

입력 2014-04-10 02:47


연세의료원과 고려대의료원이 14일 새 암(癌)병원을 동시에 개원한다. 연세의료원은 총 454병상의 연세암병원을 신축했고, 고려대의료원은 180병상을 증축한 고대구로병원에 140병상 규모의 암병원을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달 국제암대학원대학교를 개교한 국립암센터는 상반기 중 부속병원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 2016년 6월까지 220병상을 증축할 예정이다. 이로써 국립암센터의 병상 수는 732개로 늘게 된다.

사실 국내 수도권 암 병상은 이미 과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 서울아산병원 암센터(770)를 비롯해 삼성서울병원(655) 서울성모병원(500) 서울대병원(202) 등 소위 ‘빅4 병원’ 암병원과 국립암센터(512)의 병상 수만 해도 2639개나 된다. 앞으로 연세암병원과 고대구로병원, 국립암센터 증축 병상까지 추가될 경우 3500개도 훌쩍 넘어서게 된다. 전 인구 3억2000여만명의 미국에도 500병상 내외의 암 전문병원은 슬로안-케터링 암센터와 M D 앤더슨 암센터, 다나-파버연구소 등 몇 개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대학병원들의 암병원 규모 및 암 환자 유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비현실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국내 대학병원들은 왜 이렇게 암 치료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것일까. 그것은 현행 건강보험제도 안에서 보건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고 합법적으로 진료수입을 올릴 수 있어서다.

우리나라 암 환자는 암 치료 시 건강보험진료비 총액의 10%만 부담하면 되지만 소위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이용료, 간병비, 보호자 식대료 등 비(非)보험진료비는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암 치료는 이같은 비보험 진료행위가 비교적 많이 이뤄지는 분야다. 환자들 사이에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불평이 나올 정도다.

‘신의료기술’이라는 이유로 보험진료가 원천봉쇄당하는 검사와 약, 의료기기는 또 얼마나 많은가. 병원으로선 이 모든 게 합법적으로 ‘질병장사’를 할 수 있는 사업(?)이 될 수 있다. 각 병원이 암병원을 특화하며 끊임없이 비보험 진료를 유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는 2011년 91조여원에서 2013년 101조원 규모로 증가했다. 또 2012년 기준 한국인 3명 중 1명은 암으로 죽고 있다. 이는 우리가 해마다 암과 싸우는 비용으로 약 25조∼30조원을 어떤 형태로든 허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문제는 병원 간 경쟁이 심하다 보니 서로 과잉투자를 피할 수 없고, 이로 인한 과잉진료 등 후유증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물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암 환자, 즉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나라 암병원은 규모와 시설 등 하드웨어 시스템에선 결코 미국에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로봇수술 장비 등 최신 의료기기도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시설과 장비를 다루고 환자를 돌보는 데 필요한 인력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미국의 암 전문병원들은 의료진과 연구진을 포함해 병상당 직원 수가 20.6(슬로안-케터링)∼23.4명(M D 앤더슨)에 이른다. 반면 국내 암병원들은 현대, 삼성 등 재벌이 투자한 암병원은 물론 정부가 암 치료 및 연구의 롤 모델을 보여주겠다며 의욕적으로 운영하는 국립암센터조차 직원 수가 병상당 3∼4명에 불과한 형편이다.

한마디로 게임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암병원들이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질적 서비스보다는 하드웨어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양적 서비스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의사 한 사람이 볼 수 있는 하루 최대 외래 및 입원 환자 수를 제한, 각 환자들을 충분히 진찰하고 상담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하루빨리 조성해야 한다. 무분별한 암병원의 난립도 막아야 한다. 물론 국민이 암병원을 이용한 후 ‘바가지’를 썼다는 기분도 들지 않게 해줘야 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