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 새로운 100년의 약속] 오방 최흥종 목사… 독립운동가, 나환자 도운 사회운동가
입력 2014-04-10 02:31
지난 3일부터 나흘간 광주 문화예술회관에서는 연극 ‘오방선생’이 공연됐다. 총 다섯 차례 이어진 공연은 매회 만석을 기록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광주 100년사 연극시리즈의 첫 번째 주인공은 광주YMCA를 창설한 ‘오방(五放) 최흥종(1880∼1966·사진)’ 목사였다.
‘오방’은 최 목사의 생활신조로 알려져 있다. 식욕 성욕 물질욕 명예욕 생명욕을 버린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가사에 방만, 사회에 방일, 정치에 방기, 경제에 방종, 종교에 방랑 등 5가지 해방을 의미한다는 얘기도 있다. 가족의 정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적으로 구속받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경제적으로 속박 받지 않으며 종파를 초월해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는 것.
1920년 태동한 광주Y의 역사는 ‘오방의 향기’로 걸어온 세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5·8대 광주Y 회장을 지낸 최 목사는 광주Y의 설립과 재건, 도약에 헌신했다. 광주Y 창립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1924년 그가 3대 회장을 맡으면서부터 광주Y의 활동이 본격화됐다.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광주Y 재건총회 회장에 취임해 부흥에 힘썼고, 51년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회장으로 추대된다.
최 목사는 독립운동가이자 사회·노동운동가이며, 빈민선교의 선구자로도 꼽힌다. 특히 한센병 환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1911년 한국 최초의 한센병 환자 수용시설인 광주나병원을 설립했다. 32년에는 나환자근절협회를 창설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500여명의 나환자들을 이끌고 광주에서 경성의 조선총독부까지 도보 행진을 벌여 당시 일본 총독으로부터 소록도 재활시설 확장에 대한 확답을 얻어낸 일화는 유명하다. 음성 한센병환자 정착촌 ‘호혜원’을 설립해 함께 기거했고, 결핵환자 요양소인 ‘송등원’과 ‘무등원’을 각각 세웠다. 광주Y는 오방기념사업회와 오방장학회를 조직·운영하면서 오 목사의 헌신을 지금도 기리고 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