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부회장, 연대서 인문학 강연… “속도 내다 보면 귀한 것 놓쳐 결과 아닌 과정 들여다보라”
입력 2014-04-09 03:43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시인 장석주의 ‘대추 한 알’ 중)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을 읊자 학생들이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정 부회장은 “대추가 몇 개가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의 고뇌와 외로움을 찾고,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읽는 게 더 중요하다”며 ‘들여다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부회장이 8일 오후 5시 서울 연세대 대강당 무대에 올랐다. 이날 무대는 신세계그룹이 ‘인문학 청년인재 양성 프로젝트’ 중 하나로 마련한 ‘지식향연’ 강연회였다. 정 부회장은 재벌 총수로는 이례적으로 대학생들을 위한 강연회에 직접 나섰다.
정 부회장이 대학생들에게 건넨 첫 인사말은 “안녕들 하십니까”였다. 그는 “토익점수나 학점 등 스펙 쌓는 일 때문에 너무 피곤하고 지쳐 있는 청춘이 안쓰럽고 사회적 리더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을 건넸다.
그는 “왜 사는가, 무엇이 내 소명인가를 살피는 게 인문학적 성찰”이라며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는 관심과 이해가 인문학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구절의 시 ‘그 꽃’을 언급하며 “빨리 속도를 내다 보면 꽃같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놓치기 십상이니 주변을 살피라”면서 “항상 사안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야 자기 주관도 생긴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번 채용면접 때 대졸 지원자들이 자신의 주관적 소신을 말하지 않고 모범답안을 외우고 와서 한결같이 판박이 대답만 해 안타까웠다”고 지적했다.
정 부회장은 스마트폰 등을 예를 들며 “과거에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기 때문에 기존 정보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며 “지금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답은 존재하지 않으며, 새로운 답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라고 규정했다. 정 부회장은 중간 중간 농담도 하며 강연의 흥을 돋웠다. 강의 첫머리에는 “제가 강연한 뒤 혹시 여러분이 ‘정용진 강의 참 재미없더라, 심심하더라’라고 카톡이나 페이스북에 올릴까 봐 부담스러웠다”고 말해 폭소를 이끌어냈다. 고은 시인의 시를 낭독할 때는 “솔직히 짧아서 이 시를 제일 좋아하게 됐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재벌 오너의 강연에 학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정 부회장이 무대에 등장하자 학생들이 환호성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2000명만 참석할 수 있는 강연이었는데 3600명이나 참가 신청을 했다. 타 대학 학생들까지 몰렸다. 숙명여대 김슬기(19)씨는 “인문학 강의를 듣고 싶어도 기회를 찾을 수 없었는데 신세계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 같다”며 “특히 정 부회장이 ‘그 꽃’이라는 시를 소개하면서 ‘잠깐 내려놓고 주변을 살펴보라’고 한 대목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