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산업까지 ‘마구잡이’ 규제 완화?
입력 2014-04-09 02:02
이달부터 국내 항공사들이 인터넷 면세점을 통해 술을 팔 수 있게 됐다. 정부의 규제개혁 드라이브 속에 술 시장 규제도 속속 완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술 관련 규제를 마구잡이로 풀 경우 청소년 음주를 조장하고 국민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세청은 지난 1일자로 ‘주류의 통신판매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를 개정해 국내 항공사의 주류 통신(온라인)판매를 허용했다. 주류 통신판매를 할 수 없는 사업자(항공사 면세점)라도 구입자가 판매점(기내)에서 직접 대금결제를 하고 제품을 인수하는 경우에는 사전 예약주문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행법상 술의 통신판매는 전통주 사업자만 할 수 있다. 주류의 통신판매를 제한 없이 허용하면 청소년의 구매를 막기 어렵고 무자료 거래가 많아져 세수 관리에도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주는 워낙 안 팔려서 시장 활성화를 위해 오래전부터 통신판매를 허용했다.
국내 항공사들은 관행적으로 인터넷 면세점을 통해 술을 팔아오다 지난해 초 국세청이 ‘불법’이라고 지적하자 온라인 주류 판매를 중단했다. 하지만 이후 이 사안은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에 의해 ‘손톱 밑 가시’ 중 하나로 선정돼 고시 개정이 추진됐다. “외국 항공사는 다 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못하게 하느냐”는 국내 항공사들의 민원을 정부가 들어준 것이다.
이번 규제 완화로 수입 와인의 통신판매 허용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나치게 비싼 와인 가격을 낮추려고 통신판매 허용을 추진했으나 국세청의 반대로 무산됐다. 와인의 통신판매를 허용하면 알코올 도수가 와인보다 낮은 술(맥주·청주 등)의 통신판매를 막을 근거가 없어진다.
최근엔 소주 제조 관련 규제도 일부 완화됐다. 소주 제조면허가 아닌 용기주입면허만 있는 공장은 소주 완제품을 가져와 용기에 담는 작업만 할 수 있었는데, 반제품에 물을 첨가하는 작업이 추가로 허용됐다. 소주 반제품에 물까지 타서 싣고 다니면 운송비가 많이 든다는 업계의 불만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소주 업계 ‘빅3’인 하이트진로, 롯데주류, 무학은 모두 제조면허가 있는 공장과 용기주입면허만 있는 공장을 따로 두고 있다.
정부는 나머지 주류 관련 규제 중에서도 불합리한 게 없는지 따져볼 방침이다. 그러나 국민건강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엄격히 규제해 온 것을 분위기에 편승해 무작정 완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