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강은교] 살아볼 만한 이유 네 가지

입력 2014-04-09 02:26


요즈음 부쩍 많아진 생각이 있다. ‘내가 왜 살고 있는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그것이다. 몇 가지 내가 살아볼 만한 이유를 떠올려 본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도달한 생각이겠지’ 하다가도 ‘이렇게 사소한 것들로 우리는 살아가는 모양이다’라고 다시 생각한다.

그 첫 번째.

언젠가 나는 자동차의 바퀴가 거의 빠진 줄도 모르고 신나게 운전했다. 언덕길을 오르내리기까지 한 것이다. 학교 마당에 주차하는데, 가만히 보고 있던 한 학생이 다가와서 “선생님, 바퀴가 빠졌어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 차에서 내렸다. 과연 그랬다. 바퀴는 바람이 다 빠지고, 휠도 튀어나와 있었다. 기가 막혔다. 긴급수리차를 불렀다. 기사는 “꽤 많이 다니셨는데요? 이 정도가 되었는데 몰랐다니요?”라고 말했다.

“글쎄요, 정말 몰랐다니까요.” 생각할수록 불가사의했다. 어떻게 그 언덕길을 달렸으며 차들이 위협적으로 서 있는 교차로를 건넜는지, 사고 장면을 생각하면 아찔했다. 정말 아슬아슬한 인생, 운전을 잘 못함에도 별 탈 없이 여태껏 살아온 것, 고맙네, 정말 고마워. 이 정도면 살아볼 만해!

그 두 번째.

창문 앞에 서서 휘영청 밝은 달을 올려다보다가 불현듯 중얼거린다. “달을 보려거든 너의 창을 캄캄히 닫아버려라.”

그렇군. 그동안 창문을 활짝 열고도 달을 보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달은 없어지지 않았으니, 고맙네, 정말 고마워. 이 정도면 살아볼 만해!

그 세 번째.

한밤중에 커피를 한 잔 끓이려고 서두르다가 커피잔 밑에 살포시 포개져 있던 그릇 하나가 그만 떨어져 깨진다. 깨진 그릇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생각한다.

그릇이 깨지는 건 그릇이 몸 바쳐 내 짐을 덜어주는 것이리라. 이런 그릇이 있는 한 고맙네, 정말 고마워. 이 정도면 살아볼 만해!

그 네 번째.

벚꽃 잎은 왜 지는 것일까. 다시 피기 위함. 상승을 준비하는 추락. 그러다 보니 이 세상에 ‘추락’은 끝없다는 생각이 든다. 쓸쓸히 입맛 다시고 있다가 불현듯 깨닫는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불멸. 멸함이 끝없으니 그대는 불멸, 고맙네, 정말 고마워. 이 정도면 살아볼 만해!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