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母情의 위대함

입력 2014-04-09 02:39

강원도 홍천군 내면 자운리에는 살신(殺身)의 모정(母情)을 실천한 박정렬 여사 추모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박 여사는 1978년 3월 딸(6)과 함께 친정 나들이에 나섰다가 자운리 불발령에서 기습적인 폭설에 막혀 길을 잃고 탈진했다. 살을 에는 맹추위가 엄습했지만 박 여사는 윗옷을 벗어 딸을 감싸 품에 안았다.

결국 박 여사는 숨졌지만 딸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혹독한 환경에서 피붙이를 구한 것이다. ‘고 박정렬 여사 추모공원’에 세워진 동상은 어머니가 간절하고 그윽한 눈으로 품에 안은 딸을 내려다보며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 눈보라 몰아치던 불발령 고갯길, 어린 딸을 살리고 숨져간 거룩한 어머니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위령탑에 적힌 글귀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사건·사고 현장에서 모정이 빛을 발할 때가 많다. 지난해 4월 강진이 발생한 중국 쓰촨(四川)성 구조현장에서 중년 여성 양위룽은 100㎏에 달하는 콘크리트 벽을 들어올려 천하보다 귀한 아들을 구했다. 양위룽은 어떻게 괴력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무너진 주택 잔해 더미에서 발견된 한 여인은 숨졌지만 품속의 어린 아들은 한 군데도 다치지 않았다. 모정이 빚어낸 기적 같은 일이다.

일본 피겨 스타 아사다 마오의 어머니는 딸 사랑이 유별했던 모양이다. 간질환으로 별세하기 전 아사다가 자신의 간이식을 권유했으나 딸을 위해 이식수술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자신의 생명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건강과 장래를 더욱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때 교문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들을 보면 ‘애끓는 모정’ ‘애타는 모정’이란 표현이 떠오른다.

태아를 살리기 위해 암 치료를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한 미국인 엘리자베스 조이스의 사랑 이야기는 ‘모정 시리즈’의 백미로 꼽혀도 손색이 없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불임 판정을 받았지만 조이스는 기적적으로 임신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임신 한 달 만에 암이 재발한 것이다. 종양을 제거했지만 암의 전이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를 하려면 낙태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된다.

생사기로에 선 조이스는 태아의 생명을 선택하고 암 치료를 중단했다. 출산 예정일을 두 달 앞두고 인공분만으로 딸을 낳았다. 출산 6주 후 딸을 안고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모정의 위대함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길이 없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