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주말 매진 사례 이어가는 잠실야구장 가보니… 프로야구 암표상 ‘봄날은 갔다’
입력 2014-04-08 03:05
“오늘은 어제랑 다르지. 날씨 좋∼잖아.”
프로야구 두산과 기아의 경기를 3시간여 앞둔 6일 오전 11시쯤 서울 잠실야구장 중앙매표소 앞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두산 응원석인 블루석 가격을 놓고 암표상과 손님이 가격을 흥정하는 중이었다. 비가 왔던 5일 암표를 싸게 구입했던 고객이 1만5000원짜리 표를 깎아 달라 하자 암표상은 난감해하며 고객을 설득하고 있었다.
기자가 이날 암표 단속에 나선 경찰을 따라 매표소 부근을 어슬렁거리자 암표상 3∼4명이 “표 구하냐”며 접근해왔다. 주말 블루석 가격은 1만5000원. “얼마에 파느냐”고 묻자 “2만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암표상은 대부분 백발이 성성하거나 주름이 가득한 장년층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4일과 5일 날씨가 나빠 공쳤다”고 했다. 헐값에 팔았던 걸 오늘 만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잠실야구장 암표상은 대부분 ‘생계형’이다. 입장권을 정가에 대량 구입해 비싸게 파는 ‘전문 암표상’은 거의 없다. 대부분 표를 사놓고 관람을 못하게 된 이들로부터 경기 당일 헐값에 표를 넘겨받아 웃돈 붙여 되판다. 1만원짜리를 3000원쯤에 사서 1만2000원에 파는 식이다.
암표 단속은 웃돈 받는 장면을 포착해야 가능하다. 정가보다 싸게 팔거나 구매자가 가격을 확인해주지 않으면 단속이 어렵다. 오후 1시쯤 한 남성이 암표상에게 표 사는 모습을 포착한 경찰이 달려가자 그는 “내 돈 주고 사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소리치고는 야구장 안으로 사라졌다.
이날 단속에는 서울 송파경찰서 생활질서계 형사 10여명, 잠실지구대 경찰관과 기동대 1개 중대가 총동원됐다. 경기장 주변을 돌며 매표소 근처를 샅샅이 훑었지만 3시간여 동안 적발된 암표상은 단 두 명뿐이었다. 4만원짜리 테이블석 표를 8만원에 판 안모(70)씨와 1만원짜리 네이비석을 1만5000원에 판 홍모(53)씨만 16만원 범칙금 처분을 받았다.
이처럼 ‘실적’이 예상보다 저조한 이유는 1만5000원짜리 티켓을 오히려 8000원에 파는 등 ‘떨이’ 장사를 하는 암표상이 많았던 탓이다. 인터넷 예매와 소비자 간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암표 찾는 사람이 줄어든 데다 빗방울이 흩뿌린 날씨의 영향이 컸다. 개막과 동시에 주말 매진사례를 이어가는 프로야구의 높은 인기에도 암표상이 설 자리는 많지 않을 만큼 세태가 바뀐 것이다.
그래도 생계형 암표상들은 단속을 피해 필사적으로 장사한다. 송파서 관계자는 “3년 전에는 매표소 근처 사람들 틈에 섞여 대놓고 사고파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먼저 흥정한 뒤 근처 화장실이나 지하철역, 주차장으로 이동해 거래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잠실야구장 암표 단속 건수는 182건으로 2012년(106건)보다 늘었다. 올 시즌 개막 이후에는 열흘간 15건이 적발됐다. 경찰 관계자는 “적발돼도 16만원 내고 다음날 다시 암표를 파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