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팔레스타인인이 고향에서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이유 “정의는 폭력 아닌 인도적 방법으로”
입력 2014-04-08 02:33
에스마트 만수르(37)는 매주 한번 팔레스타인 고향 마을 인근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서 이스라엘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가르친다. 지난 3일(현지시간)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고향 마을의 여러 지명을 히브리어로 쓰게 하고 모든 요일을 암송하게 했다. 히브리어를 배워야 하는지를 놓고 토론도 시켰다.
만수르는 20년 동안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돼 있다 지난해 8월 풀려났다. 미국의 중재로 이뤄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 협상 재개의 선결 조치에 따른 것이다. 그는 1차 석방자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감옥에서 그는 히브리어를 배웠고, 매일 몇 시간씩 히브리어로 된 책을 읽었다. 그리고 히브리어 소설도 여러 권 썼다. 그러면서 그는 이스라엘을 포함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히브리어를 알아야 이스라엘 점령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미래의 다리를 놓을 수 있습니다.” 만수르가 팔레스타인 어린 학생들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이유다.
만수르는 16세 때인 1993년 10월 3명의 동네 형들이 이스라엘인 하임 미즈라히(30)를 살해하는 데 가담했다. 바로 그날 이스라엘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평화협상의 전 단계로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기로 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는 폭력만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형기를 2년 남겨둔 만수르는 풀려나기 전날 이스라엘의 국내 정보기관인 신베트 요원 앞에 섰다. 고향 마을의 위성지도를 보며 1년 동안 감시를 받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규율을 어기면 남은 형기를 다시 채워야 한다.
그는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꿈꾸는 팔레스타인인이다. 지금도 팔레스타인인민해방민주전선(DFLP)의 구성원이다. 집으로 돌아온 날 가족들은 염소 25마리를 잡아 잔치를 열어줬다. 팔레스타인자치정부는 5만 달러(약 5200만원)의 축하금을 지불했고, 일반 주민들의 평균 임금보다 높은 6000셰켈(약 181만원)을 매달 지급한다. 하지만 지난 20년의 수감 생활은 그의 생각을 바꿔 놨다. 그는 7일 AP통신에 “정의는 인도적인, 그리고 정당한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