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주사 후 옷 입기 전 간호사 문 벌컥 열고 나가… 진료 과정 성희롱 실태조사
입력 2014-04-08 02:20
“최근 2주 사이 성관계 가진 적 있나요? 마지막 생리 언제였죠?”
최근 갑작스러운 복통에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은 정모(24·여)씨는 의사의 이런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바로 뒤에 젊은 남성 환자 두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임신 가능성을 확인한다며 성관계와 생리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진료가 끝나자 간호사는 정씨 엉덩이에 진통제 주사를 놓은 뒤 “5분 정도 누르세요” 하더니 곧바로 주사실 문을 열고 나갔다. 속옷도 채 못 올린 정씨는 열린 문 밖에서 의자에 앉아 대기하는 남성 환자와 눈이 마주쳤다.
고관절 통증 때문에 수시로 교정치료를 받는 홍모(26·여)씨도 지난해 11월 불쾌한 경험을 했다. 의사가 “뼈를 만져봐야 한다”며 엎드려 있던 홍씨의 바지를 동의도 구하지 않고 내리더니 목부터 엉덩이까지 손으로 만졌다. 산부인과에서 질 초음파검사를 받으려던 A씨는 남자 의사가 부담스러워 여의사 특진을 신청했지만 여의사가 남자 수련의와 함께 들어오는 바람에 특진료만 날리고 말았다.
최근 5년간 의료기관을 이용한 성인 여성 10명 중 1명꼴로 진료 과정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7일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를 받아 실시한 ‘진료 과정의 성희롱 예방기준 실태조사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59세 성인 여성 1000명 중 118명(11.8%)이 이런 경험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지 않는 공간에서 진찰·검사를 위해 옷을 벗거나 갈아입어야 해서’(46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외모에 대한 의사의 성적 표현(30건), 진료와 관계없는 성 경험 질문(25건) 등이 뒤를 이었다.
여성들은 이용 빈도가 높고 가슴과 배 촉진이 빈번한 내과(50.8%)에서 성적 불쾌감을 가장 많이 느꼈다. 산부인과(45.8%) 정형외과(24.6%) 한의원(21.2%)과 밀착 진료가 이뤄지는 치과(20.3%)가 뒤를 이었다. 성적 불쾌감을 준 의료인이 ‘남성’이었다는 응답이 80.5%로 압도적이었지만 ‘여성’이었다는 응답도 37.3%를 차지했다.
성적 불쾌감을 경험한 이들은 대부분 아무 대응도 하지 않거나(52.5%) 해당 의료기관에 다시 가지 않는(31.4%) 등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책임자에게 이의를 제기하거나 경찰, 인권위 등에 알린 경우는 22%뿐이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