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국내 로펌… 외국계 전문성 못 따라가 안방서 ‘기업 자문’ 다 뺏겨

입력 2014-04-08 03:25

외국계 대형 로펌들이 국내 법률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법률서비스 분야 수지는 2006년 이후 한 차례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2017년 국내 법률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면 국내 로펌들이 설 자리는 더 협소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행이 최근 집계한 국제수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 법률서비스 적자는 7500여억원에 달했다.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계 로펌의 법률서비스를 이용하고 지불한 금액은 1조5800여억원에 달하는 반면 우리나라 로펌이 외국기업을 대리해 벌어들인 돈은 8300여억원에 그쳤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최대 적자폭이다.

적자의 원인은 간단하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할 때는 현지의 외국계 로펌을 선임하는 경우가 많다. 현지 로펌이 해당 지역의 법률에 더 해박하다는 이유에서다. 코오롱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듀폰과의 소송에서 미국계 로펌인 폴 헤이스팅스를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이 로펌은 미국 반도체 업체인 선에디슨의 나스닥 주식 상장과 관련한 삼성전자와 삼성정밀화학의 사모펀드 투자 자문도 맡고 있다.

반면 국내 로펌들은 국내에 진출하는 해외기업들을 제대로 유인하지 못하고 있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7일 “국내 진출 해외기업들은 국내 로펌을 선임하기보다는 외국계 로펌들을 끼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로펌들이 글로벌 경영 환경에 익숙한 외국계 로펌들의 축적된 전문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2017년 법률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면 현재 자문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외국계 로펌들이 국내 소송 분야까지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로펌 관계자는 “벌써 일부 외국계 로펌들이 국내 변호사들을 고용하거나 중소 로펌들과 제휴하는 방식으로 국내 소송 분야 진출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영·미계 로펌 진출에 토종 로펌들이 대부분 고사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로펌들이 내실을 다질 시기가 왔다고 진단했다. 노영희 대한변협 수석대변인은 “그동안 국내시장 내에서의 경쟁에만 안주해 왔다”며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통해 경험을 쌓아 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외국계 로펌들을 상대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로펌 변호사는 “국내 최대 규모라 불리는 김앤장의 변호사 수가 500명 정도인데, 영국과 미국의 유명 로펌들은 3000∼4000명가량의 변호사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규모의 차이가 서비스 질의 차이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정현수 문동성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