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란 이름의 질병] 박종익 前 중앙자살예방센터장 “낙오자에게 새 기회 주는 사회구조 만들어야”

입력 2014-04-08 02:50


“동반 자살한 서울 송파구 세 모녀가 만약 기초생활수급자였다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몸이 불편한 두 딸을 돌보는 건 어머니 혼자의 몫이었을 겁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낸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종익(48·사진) 교수는 7일 한국이 자살 고위험 사회가 된 배경으로 실수를 만회하기 어려워진 사회구조를 꼽았다. 1980년대만 해도 공부 좀 못해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도 재취업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입시 결과로 인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박 교수는 이를 ‘구조적으로 자살을 부추기는 사회’라고 분석했다. 그는 “패배하면 죽는다고 생각하니 경쟁자에게 서슬이 퍼렇고 잔인해진다”며 “경쟁이 치열해도 낙오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느냐 안 주느냐가 선진국과의 차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사회구조를 바꿔야 하지만 우리 정책의 대부분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박 교수는 “정권마다 5년 임기 안에 성과를 보려 하니 정책이 오래 가는 게 없다”며 “사회에서 뒤처진 이들보다는 성과가 나올 만한 중산층에 정책 역량이 집중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치솟는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선 효과적인 단기 정책을 수립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는 자살 위험군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현재 정부에서 운영하는 자살예방센터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관리하기 어려운 구조다.

박 교수는 “서울의 주민센터 직원 1명이 기초생활수급자 480여명을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며 “지나친 업무 강도로 복지공무원이 자살하는 나라,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자살 예방 정책에 투입되는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한 일본은 지난해 30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올해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사업 총 예산은 75억여원에 불과하다.

박 교수는 정부·연구자·민간의 유기적인 협력만이 자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는 경제적 빈곤, 우울증, 다혈질 성격, 음주 여부 등이 자살과 얼마나 관계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기업과 시민단체 등 민간 분야는 캠페인을 통해 자살에 대한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자살예방 캠페인을 시행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박 교수는 “여전히 ‘자살을 막아봤자 또 할 것 아니냐. 개인적 선택을 왜 간섭하느냐’는 의견이 많다”며 “정부 예산은 한정돼 있으므로 기업의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일보의 ‘자살이란 이름의 질병’ 시리즈 기사를 모두 감수한 그는 “대부분 자살 보도가 사건을 안 다루느니만 못한 부작용을 많이 낳고 있다. 자살은 모든 사회문제의 결정체인 만큼 언론에서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춘천=글·사진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