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성진근] ‘쌀산업 잃어버린 10년’ 속죄하자

입력 2014-04-08 02:31


우리나라 쌀은 두 차례에 걸쳐 관세화에 의한 시장개방을 세계무역기구(WTO)로부터 예외적으로 유예 받았다. 그리고 금년 9월까지는 2015년 이후의 쌀시장 개방 방식을 통보해야 한다. WTO의 ‘예외 없는 관세화에 의한 시장개방’ 원칙에서 벗어나는 대가로 우리나라는 양허관세율(5%)에 의한 의무수입물량(MMA)의 증량을 약속했다. 첫 번째 10년간(1995∼2004)에는 5만1000톤에서 20만5000톤으로, 그리고 두 번째 10년이 끝나는 2014년에는 40만9000톤을 의무 수입해야 한다.

5% 관세율에 의한 의무수입량 40만9000톤은 우리나라가 관세화에 의한 개방을 선택하더라도 앞으로 계속 수입해야 한다. 이 물량은 2013년 국내산 쌀 소비량의 9%에 해당하는 양으로 쌀 소비 감소추세를 고려할 때 우리 쌀 산업에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의무수입량을 대책 없이 늘려온 지난 10년간은 ‘한국 쌀 산업의 잃어버린 10년’이었다. 국내 쌀 생산의 풍·흉에 관계없이 낮은 관세율에 의해서 수입되는 의무수입량은 농가판매가격을 낮추고 농업총수입에서 쌀 수입(收入)의 비중을 낮추는 데 주로 기여했다. 농가의 쌀 재배의욕을 저하시켜 미곡재배면적을 10년간 연평균 1.86%씩 줄이게 하였으며, 급기야는 식량 자급률까지 26.8%에서 23.6%로 떨어뜨렸다.

쌀의 과잉재고를 관리하기 위한 국민혈세 손실은 물론 과잉 재고미(2010년 연말재고량 150만9000톤)를 해외로 수출하여 처리하려는 계획도 무산시켰다. 그뿐인가? 고품질 쌀의 해외 수출길도 막아버렸다. 수입은 금지하면서 수출은 할 수 있느냐는 국제사회의 반발에 대한 통상당국의 우려와 제지 때문이었다.

일본과 대만도 쌀 관세화 개방을 유예했으나 1차 유예기간 중에 관세화 개방으로 돌아섰고 필리핀은 3차 유예를 위해서 일시의무면제 협상을 현재 진행하고 있으나 의무수입량의 2배 증량 등 대가 지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만약 2004년에 관세화개방 방식을 선택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의무수입량은 2004년의 20만톤에 묶였고 고율관세(400%내외)로 수입되었을 물량은 일본과 대만의 경우와 같이 연간 500톤 내외에 불과해 쌀 산업의 위축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 쌀값은 미국산 중립종 가격이 2014년 2월 현재 톤당 1034달러를 넘어섰다. 중국산 쌀값(MMA수입)은 2005년의 톤당 393달러에서 2012년 922달러로 급등하고 있다. 관세화에 의한 개방을 하더라도 2014년 1월 가격 712달러(미국쌀) 기준으로 관세율 400%를 적용하면 우리 쌀보다 2배 이상 비싸지게 되어 추가 수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국 쌀 산업의 잃어버린 10년’은 포퓰리즘 정책선호적인 정권과 소신 없는 관료, 개방반대라는 명분론에 치우친 농민단체와 인기영합적인 학자들이 합작한 결과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은 2004년 재협상 당시에도 쌀농사 짓는 농민단체가 관세화 개방방식에 찬성하는데도 불구하고 쌀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관세화 유예라는 ‘쥐약’ 처방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중국은 쌀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소득증가에 따라 고가의 고품질 쌀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중국 쌀 수입급증 현상에 따라 국제 쌀값은 앞으로도 상승추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한국 쌀 산업의 잃어버린 10년’을 강요했던 이들은 전 국민과 쌀 생산농가들에게 속죄하는 자세로 구차스러운 개방유예 논리를 거둬들여야 한다. 그리고 관세율이 하락하는 제한된 기간 동안에 쌀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특히 쌀의 수출산업화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비록 늦었지만 실리 추구적으로 쌀 개방방식을 바꾸어야 할 때다.

성진근(충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