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용백] 수레 感恩號에 배운다

입력 2014-04-08 02:31


올 들어 미국지역 맥도날드 매점에서 노인들이 잇달아 쫓겨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고령사회 구성원들의 ‘생활 속도’에 대한 의식 변화가 절실함을 확인시킨다. 지난 1월엔 뉴욕에서 한인 교포 노인들이었는데 2월엔 버지니아주 컬페퍼카운티에서 80대 미국인 부부가 피해자였다. 노인들이 느릿느릿 매점에 오래 머무는 게 문제였다. 매출을 의식한 점주와 젊은 직원들이 이를 달갑지 않게 여겨 벌어진 일들이었다.

문제가 발생했던 매점들은 결국 사과했다. 붐비는 시간 이외에 노인들의 매점 이용에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으로 사건들을 매듭지었다. 맥도날드 매점 이용은 노인들의 생활 일부분이고 교류 공간으로의 이점도 있어 신중히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같은 일이 매달 벌어졌다는 것은 맥도날드가 당초 영업방침에 노인들을 중요 고객으로 염두에 두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느림에 대한 인식 바뀌어야

얼핏 패스트푸드(fast food) 매점에 슬로 모션(slow motion)의 노인들이 적합하진 않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노인들이 동작 빠른 젊은이들이나 식사를 빨리 해결하려는 사람들처럼 행동을 신속히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도 문제다. 맥도날드 사건들은 상업적 속성만으로는 기업이 고령인구를 껴안을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하겠다.

현대경제연구원의 ‘가족 내 노인고령자의 역할 변화’ 보고서는 2012년 우리나라 가족 구조가 핵가족, 1인 가구 증가 추세라고 분석하고 있다. 2030년쯤이면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율이 높은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갈수록 1인 가구가 늘고 독거노인들이 그 상당수를 차지할 것임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횡단보도를 느린 속도로 건너는 노인을 가끔 목격할 때가 있다. 빨간불로 바뀌어도 도로를 마저 건너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이럴 때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퍼넌도밸리에서 2006년 벌어졌던 사건이 떠오른다. 80대 할머니가 5차로 횡단신호 때 횡단보도를 마저 건너지 못해 도로 중간에 고립됐다. 교통경찰관이 교통방해 혐의로 범칙금 고지서를 발부하면서 논란거리가 됐다.

교통 당국이 해당 도로의 신호교체시간을 측정했다. 불과 20초여서 고교생도 서둘러 건너야 하는 상황임이 확인됐다. 시의회가 교통 당국에 노인들에게도 적합한 신호체계 마련을 요구한 것은 당연했다. 우리 사회도 노인들의 바깥 활동이 일상화하는 초고령사회가 곧 된다. 신호체계도 그에 맞춰 시간을 더 많이 계산해야 할 듯싶다.

고령사회엔 배려와 지혜 필요

중국에서 90대 노모를 태운 수레를 직접 끌며 걸어 유람 중인 60대 딸이 있다. 차멀미를 하는 노모를 위해 수레를 이용한 유람을 지난해 4월 시작, 여태껏 하고 있다. 수레 이름은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다’는 뜻의 감은호(感恩號)다. 수레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며 수백 개 도시, 수천㎞를 걸어 노모가 좋아할 만한 곳은 무조건 간다. 딸은 어떤 금전적인 지원보다도 어머니 생전에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 드리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노모의 건강과 속도에 맞춘 딸의 효성에서 우리 사회가 그 배려와 지혜를 배워야 한다. ‘빨리빨리’로 성장해온 우리 사회는 머잖아 초고령사회로 간다. 사회 구성원들도 느린 속도를 인내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사회 전체가 유기적으로 지원하는 공동체 분위기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가족 같은 유대감이나 배려를 통해 노인들의 정서적 안정감이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들, 사회단체들은 노인들을 위한 공공서비스 확충 등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김용백 편집국 부국장 yb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