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서직수 초상’ 보고 충격, 정신까지 담는 초상 되살려”… 이원희 ‘초상-더 클래식’ 展

입력 2014-04-08 02:20


1990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25년째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이원희(58)만큼 유명인사를 많이 그린 작가도 드물다. 김영삼 전 대통령, 윤관·이용훈 전 대법원장, 김재순·이만섭·김수한·박관용·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 등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동안 그린 초상화만 500여점이다. 작품도 잘 팔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청와대 국회 대법원 등에서 소장할 정도로 작품성도 평가받는다.

원래 풍경화를 그리던 그가 초상화에 뛰어든 계기는 뭘까. 서울 종로구 평창길 작업실에서 최근 만난 그는 “30년 전 대학원(계명대) 논문을 준비하면서 조선후기 화원화가 김홍도와 이명기가 합작한 ‘서직수 초상’(보물 제1487호)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뛰어난 초상이 있는데 지금은 왜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가는 그 이유를 찾아 회화 대부분이 인물화로 채워진 유럽 미술관 답사에 나섰다. “수년간 돌아보니 문제는 재료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서양회화가 들어온 지 100년이 지났지만 유화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수묵을 대신하는, 유화 물감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던 거죠.”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인물의 정신까지 그려내는 우리 전통초상화의 전신사조(傳神寫照)기법과 서구 고전주의 초상화를 접목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주변 사람들을 그리다 소문이 나면서 유명인사들의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잘생기고 예쁘게 그려달라는 요청이 많아요. 어떤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계속 다시 그려달라고 해서 10번이나 그린 끝에 포기한 적도 있어요.” 한 기업체 사장의 경우 20년간 자신의 초상화를 시기별로 10점이나 주문하기도 했다고.

그가 유명해진 것은 청와대에 걸린 김영삼 전 대통령 초상화 때문이다. “(이젤 앞에 앉아서 그런지) 대통령의 표정이 엄청 굳어 있더라고요. 좋은 그림이 나오려면 모델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며 일단 비서를 물리치도록 요청했어요. 비서가 곁에 있으면 모델이 자신도 모르게 자꾸 근엄해지거든요. 단 둘이 이야기하면서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죠.”

유화로 그린 초상화 50여점과 크로키 20여점 등으로 1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평창로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다. 서양 고전회화의 본질을 살펴보고 한국화단과의 접점을 모색해본다는 의미에서 전시 타이틀을 ‘초상-더 클래식(THE CLASSIC)’으로 정했다. 한때 풍경화로 인기를 끌었던 그가 초상화 작업으로 개인전을 여는 것은 처음이다.

출품작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박근혜 대통령의 초상화이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인 2009년 세 번 만났다는 작가는 “누나 같은 인상이었다. 주름살은 좀 없애고 특유의 표정을 살려서 그렸다”고 말했다. 한복을 입은 박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영국을 국빈 방문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함께 있는 장면도 캔버스에 옮겼다. 청와대에서 직접 제공한 사진을 토대로 그린 작품이다.

김용건·하정우 부자, 박원순 서울시장, 가수 이은미, 건축가 승효상,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 최초의 재불 여성화가인 고(故) 이성자 화백 등의 초상화도 볼 수 있다. “초상화 주문이 계속 들어와 경제적으로 효자품목”이라고 밝힌 작가는 “초상화를 영정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회화의 핵심으로 부흥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02-720-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