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에케 호모(Ecce Homo·이 사람을 보라)

입력 2014-04-08 02:03


두 갈래 길이 보였다. 지난해 독일 방문 당시 헤른후트(Herrnhut)에서 모라비안 공동체를 이끈 진젠도르프(Zinzendorf·1700∼1760) 백작 무덤을 갔을 때였다. 헤른후트는 독일과 체코, 폴란드 국경에 인접한 인구 1200여명의 마을. 이곳의 영주였던 진젠도르프 백작은 체코 서부 보헤미아의 경건한 복음주의자들로 18세기에 종교적 박해를 피해 헤른후트에 정착한 모라비안 교도들과 형제단을 만들어 근대 독일의 영적 각성을 이끌었다. 헤른후트는 ‘하나님의 피난처’ 또는 ‘하나님의 오두막’이란 뜻.

헤른후트 마을 내 ‘하나님의 영지(Gottesacker)’라 불리는 모라비안 교회 묘역에 있는 진젠도르프 무덤까지 올라가는 도중 두 갈래로 길이 갈라져 있었다. 오른쪽이 진젠도르프 무덤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길로 가야’ 진젠도르프 무덤에 도달한다.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진젠도르프는 19세에 뒤셀도르프에서 이탈리아의 화가 도메니코 페티의 작품 ‘에케 호모(이 사람을 보라)’에 묘사된 예수 수난 장면의 그림을 보고 평생 주님의 십자가와 동행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요한복음 19장 5절에서 총독 빌라도는 가시면류관을 쓴 채 자신 앞에 끌려 온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에케 호모(Ecce Homo·이 사람을 보라)”라고 말했다. 채찍에 맞아 살점이 찢겨 나온 처연한 예수 그리스도가 거기 있었다. 군중들은 빌라도의 말에 답한다. “십자가에 다시오!”

진젠도르프가 도메니코 페티의 그림 앞에 섰을 때 내면의 음성이 들렸다. “내 너를 위해 이 일을 했건만, 넌 날 위해 무엇을 하려느냐?” 그 음성이 한 청년의 인생을 과격하게 변화시켰다. 그가 한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에 선교의 새 역사가 시작됐다.

“에케 호모”란 절체절명의 말에 대한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빌라도 당시 군중들은 그 말을 통해 살인의 충동을 느꼈다. “십자가에 달아 죽이시오!” 그때 이래로 이 땅 사람들은 ‘살인의 추억’ 속에 살아가야 했다.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예수를 다룬 자신의 책 제목을 ‘에케 호모’라고 지었다. 그것은 지독한 경멸의 언사였다. 물론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젠도르프와 같이, 또 한 사람 프랜시스 하버갈과 같이 에케 호모에 응답해 새 길을 간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영국인 하버갈은 페티의 그림을 보고 찬송가 ‘내 너를 위하여’를 작사했다. 어찌 그들뿐인가. 윌리엄 캐리가, C T 스터드가, 짐 엘리어트가, 길선주 장로가, 주기철 목사가, 구름 같이 둘러싼 믿음의 선진들이 ‘에케 호모’에 응답해 자신의 길을 버리고 그분의 길을 따랐다. 무수한 사람들이 페티의 작품 앞에 섰지만 누구나 진젠도르프와 같이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었다. 결국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사순절이 지나고 있다. 온 천지에 풍긴 벚꽃 향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핏빛 자욱이 선명한 시즌이다. 지금 무언가가 들리지 않는가. “에케 호모!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을 보라.” 이 소리에 응답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가시면류관을 쓰고 피 흘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은 21세기를 사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말하신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을 주느냐?”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