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왕서방 배만 불린 중국판 ‘나가수’
입력 2014-04-07 03:02
[친절한 쿡기자] 최근 중국에서 가장 핫한 드라마가 SBS ‘별에서 온 그대’라면 예능은 단연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입니다. 2011년 MBC ‘일밤-나는 가수다’를 기획한 김영희 PD가 포맷을 수출해 만들어진 중국판 ‘나가수’는 지난 4일 150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된 결승전으로 시즌2를 마쳤습니다.
시청률은 경이적입니다. 위성채널이 40여개에 달하는 중국에서 시청률 대박 기준은 1% 남짓인데 ‘나가수’는 평균 시청률 2.3%, 최고 시청률 4.3%를 기록했습니다. 중국 예능 역사를 새로 쓴 셈입니다. 금요일 오후 7시라는 황금시간대에 편성된 것도 주효했지만 무엇보다 가수들의 대결로 ‘가왕’을 뽑는 콘셉트에 대륙이 열광했습니다. 중국 후난위성TV는 시즌1과 시즌2 우승자가 맞붙는 이벤트는 물론 시즌3 준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아빠! 어디가?’도 ‘나가수’ 못지않습니다. 시청률 4%대를 올렸고 중국에서 영화로도 제작돼 1000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습니다. 지난 2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7회 종예 시상식에서 올해의 프로그램·올해의 제작자 수상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사그라진 줄 알았던 한류 돌풍이 다시 들끓는 모습은 마냥 뿌듯합니다. 그런데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습니다. 중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에 비해 저작권을 판매한 한국이 손에 쥔 것이 초라하기 때문입니다.
‘나가수’로 후난위성TV가 벌어들인 수입은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한국이 가져온 돈은 30억원에 그쳤습니다. 포맷 수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아빠! 어디가?’도 비슷한 수준입니다. 100억원을 들여 만든 SBS 드라마 ‘쓰리 데이즈’ 또한 회당 제작비가 5억원에 육박하는데 판권은 고작 회당 5360만원에 팔렸습니다. 인터넷 판권은 회당 2000만원으로 더욱 떨어집니다.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 셈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콘텐츠 저작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4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중앙로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에서 열린 문화융성위원회 제3차 회의에서 “‘구름빵’이란 콘텐츠가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도 작가가 얻은 수입은 2000만원도 되지 않는다”면서 “이래서야 한국에서 (‘해리 포터’를 쓴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이 나오길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2004년 어린이 그림책 ‘구름빵’을 쓴 백희나씨는 당시 무명작가이다 보니 2차 콘텐츠 등 모든 저작권을 출판사에 넘기고 850만원을 받는 매절(買切) 계약을 했습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무려 40만권이 팔렸지만 출판계 관행 앞에 인세 수억 원을 놓쳤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김서방이든 왕서방이든 돈을 버는 것은 좋습니다. 다만 순진한 곰이 열심히 재주를 부렸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줘야 합니다. 저작권 보호와 유통구조 개혁이 일어난다면 더 이상 배고픈 곰은 없을 것입니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